밭농사와 논농사를 지으며 경비 일을 하고 있는 김을성 씨는
어머니를 챙기듯 마을 어른들의 일을 챙긴다.
“해야 하는 일이고 눈에 보이는데 지나칠 수 없잖아요?”

[당진신문=배길령 기자] 우리는 참 표현에 서투르다. 남을 칭찬하는 일에 인색하고 타이밍을 놓쳐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입 간지러워 참을 수 없는 착한 당진 사람들의 선행이 보인다. 내 고장 당진에 살고 있는 좋은 분들을 알게 된 이상 지나칠 수 없다. 이에 본지는 입 간지러워 참을 수 없는 착한 당진 사람들의 선행을 칭찬해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집 앞에서 다정한 구무임 어머니(92)와 아들 김을성(68) 씨
집 앞에서 다정한 구무임 어머니(92)와 아들 김을성(68) 씨

볕이 좋은 하늘아래 알록달록 예쁜 꽃이 창밖으로 흔들리고 아버지의 인자한 모습이 한쪽 벽에 걸린 집에는 김을성 씨(68)가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지낸다.

김을성 씨(68)가 고향 당진으로 돌아온 것은 5년 전인 2014년, 오래된 낡은 집에 계신 부모님이 걱정이었던 둘째아들은 다른 형제들의 처지를 생각해 홀로 부모의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많이 연로하신데 다른 형제들은 오기 힘들고 제가 제일 시간이 많아서요. 여기 집이 옛날 집이라 문지방도 높고 다른 집보다 지대도 낮아서 습기가 항상 차는데다가 벌레도 많아서 집이 엉망이었어요”

김을성 씨는 이제라도 부모님이 더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을 짓기로 결심하고 본래 집의 지대를 높이고 볕이 잘 들며 집안 곳곳에 문턱이 없도록 만들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무릎이 안 좋으셔서 편하게 다니실 수 있도록 문턱은 다 없애버리고 지대도 높였어요. 햇볕 잘 들고 어머니 보시기 좋으라고 앞뜰에 꽃도 심고 나무도 심고요”

둘째아들 덕에 좋은 집에서 지낸다는 구무임 어머니(92)는 착하다는 말을 거듭 얘기할 정도로 아들이 착하다고 말했다.

“착해요. 집에 애들 다 착한데 얘가 참 착해요. 내가 경로당 가서 할머니들이랑 놀고 있음 꼭 데리러 와서 다른 할머니들도 다 집까지 모셔다 주고 그래요. 저 아버지 아파서 병원에 가 누워계실 때는 매일 아침저녁 아버지 찾아뵙고 다리 주물러드리고, 어떻게 아들이 저렇게 잘하냐고 간호사선생님들이 그래요”

어머니의 착한아들인 김을성 씨는 사실 마을에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마을의 효자다. 김을성 씨는 어르신들한테 인사 잘 하고 일 도와드리고 하는 게 다라며 착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라며 손을 내저었다.

“사실 별수 없잖아요. 마을에서 제가 제일 젊다보니까 마을에 계신 어르신들이 모두 부모 같은 분들이신데 안 도울 수도 없고. 어르신들이 다 8,90이신데 농사 지으시고 하는데 어떻게 알면서 가만히 있어요”

밭농사와 논농사를 지으며 경비 일을 하고 있는 김을성 씨는 어머니를 챙기듯 마을 어른들의 일을 챙기기도 한다. 봄이면 모판을 만드는데 손을 걷어 부치고 가을이면 추수 후 벼를 말리는 일을 돕기도 한다.

“대부분 동네 어르신들이 직접 모판을 하세요. 저는 경비 일을 다니다보니 집을 비울 때도 있어서 모판을 사다가 하는데 어르신들은 옛 방식 그대로 상토에 씨 뿌리고 물주고 옮기고 다하시니까. 그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 가서 조금 거들어드리는 거죠. 가을이면 또 벼를 말려야하는데 건조기도 있지만 볕에 널어 말리기도해서 그게 포대가 무겁기도 하고 혼자서 담을 수도 없고요”

김을성 씨의 가족은 현재 충북 충주에 있다. 두 딸은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가정을 이루었지만 아내는 김을성 씨처럼 홀로 충주에 있다. 같이 당진으로 올 수 없었던 이유는 아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며 직장을 계속 다니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제 삶만큼 아내의 삶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아내가 더 공부하고 싶고, 일을 다니고 싶다고 하면 그렇게 하는 거죠”

마을에서 소문난 착한 아들이라 아버지 살아생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와 맛있는 음식을 해주기도 했다는 김을성 씨는 새로 지은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지내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다.

“제가 당진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아버지께서 건강하셨는데 한번 넘어지고 나서는 거동을 제대로 못하시더니 돌아가시기 1년 반 정도는 병원에 계시다가 가셨어요. 2017년 8월에 집을 다 지었는데 아버지는 3월에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생각을 하면 그게 가장 마음이 아파요”

김을성 씨의 하루는 어머니와 맛있는 밥을 해먹고 논밭으로 농사를 지으러가고 경비 일을 다녀오고 경로당의 어머니를 모셔오고 또 어르신들을 모셔다 드리고 때때로 어머니와 병원을 가고 그러고도 남은 시간에는 마을 어르신 일을 틈틈이 거들어주며 집 앞 뜰을 가꾸고 있다.

가끔은 혼자서 어머니를 돌보고 마을 어르신들의 일을 나서서 돕는 게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김을성 씨는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죠. 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눈에 보이는데 지나칠 수 없잖아요?”라며 소탈하게 웃었다.

저작권자 © 당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