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백성들의 염원을 담은 바위 ‘안국사지 매향암각’
고려 말 백성들의 염원을 담은 바위 ‘안국사지 매향암각’
  • 이석준 기자
  • 승인 2021.10.09 11:00
  • 호수 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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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의 역사문화유산을 찾아서

[당진신문=이석준 기자] 당진 지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역사문화유적지가 많다. 예산이 투입돼 활발하게 복원되고 관리되는 곳들도 있으나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역사문화유적지도 있다. 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지역의 소중한 자산인 당진의 역사문화유적지를 조명해보려 한다. 지역 내 역사·문화·유적지를 둘러보고, 그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한다. 

당진시 정미면 원당골1길 188 안국사지 매향암각
당진시 정미면 원당골1길 188 안국사지 매향암각

정미면 원당골에 위치한 안국사지는 보물 제100호, 101호로 지정된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과 안국사지 석탑이 유명하다. 하지만 고려 시대 양식으로 축조된 거대한 석조여래삼존입상과 석탑에 바로 뒷편에 있어 지나치기 쉬운 곳에 안국사지 매향암각이 있다.

매향암각은 미륵세상을 기원하며 강과 바다가 만나는 갯벌에 매향목을 묻는 매향 의식을 치르고 그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고려 후기 민중들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갯벌에 향나무를 묻고 제를 지냈는데 이를 통해 미륵 세상이 도래하고, 백성들의 삶이 평안하기를 바랐다. 이때 묻은 향나무는 오랜 세월이 지나 바다 위로 떠오를 것이라 믿었는데 이것을 침향이라고 불렀다.

이 침향을 말린 후 불을 피우면 이 세상 어느 향보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향기를 뿜어낸다고 해 불교에서 최고의 향으로 여겼다. 원래 침향은 동남아시아 등 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향나무의 한 종류다. 하지만 당시에는 침향의 조달이 어렵고 그 가격 또한 매우 높아 왕실, 귀족이 주로 사용했고 매향제에는 일반적인 향나무가 사용됐다.

매향제가 집중적으로 이뤄진 시기인 14세기~15세기는 왜구가 창궐해 백성들의 피해가 막심했던 시기다. 매향제가 불교기반 향촌농민조직인 향도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이뤄진 것을 볼 때 안국사지 매향암각은 호국불교신앙인 미륵신앙과 전통신앙인 거석신앙이 결합한 결과로 짐작할 수 있다.

이 시기는 고려왕조가 말기로 백성들은 이전부터 지속된 몽골과 거란의 침입, 왜구의 창궐에 의해 도탄과 혼란에 빠져있었다. 당시 해안선이 내륙 깊은 곳에 형성돼 있던  당진은 가볍고 빠른 배로 무장한 왜구가 바다를 통해 내륙까지 들어와 해안선, 내륙 마을을 약탈하는 경우가 빈번했고, 백성들의 피해 또한 심각했다.

당진시청 문화관광과 남광현 문화재팀장은 “고려는 12세기 이후 거란, 몽골의 침입에 큰 피해를 입었다. 이 과정에서 호국불교와 민간신앙이 다양하게 결합했다. 이는 민심의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함이었고 매향제 또한 그 일환이었을 것”이라며 “안국사지에 조성된 석불이 고고하고 귀족적인 모습이 아닌 다소 투박하지만 민중을 닮은 형태로 조성된 것도 고려 말기 혼란의 상황에서 내세의 행복을 빌었던 민중들의 염원이 투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안국사지 석조삼존여래입상.
안국사지 석조삼존여래입상.

백성들의 염원은 매향암각에 새겨진 전설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고려 초 중국의 목공 가 씨라는 사람이 바다에서 큰 풍랑을 만나 정미면 수당리 앞바다까지 밀려왔다. 그곳에 사는 어부에게 발견된 가 씨는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고 금세 회복되었다. 가 씨는 어부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어부에게 배를 만들어 주었는데 배의 성능이 뛰어나 금새 유명해졌고, 배를 만들며 큰 돈을 모은 가 씨는 모은 재산을 모두 곡식으로 바꿔 안국산 바위 구멍에 보관했다. 

어느날 큰 배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받은 가 씨가 작업에 열중하던 중 갑자기 큰 비가 내렸고 산위에 올라 바위 구멍을 막으려는 순간 벼락이 내리쳤고, 그가 만들던 배는 커다란 바위로 변해 곡식이 쌓인 구멍을 막아버렸다. 지금의 안국사지 매향암각은 가 씨가 만들던 배가 바위로 변한 것이며, 바위 아래에는 온 나라백성이 하루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의 곡식이 깔려있다는 내용의 전설이다.

당시 백성들이 매향제를 통해 이상적인 세상이 오길 바라는 미륵신앙에 기반해 종교적 구원을 염원했다면 전설의 말미에 등장하는 나라의 모든 백성들이 하루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의 곡식이라는 구절을 통해 현실적인 문제 해소 또한 간절히 염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국사지 석탑.
안국사지 석탑.

지금도 강화도와 부안 등 서해안 일대에는 지역주민을 중심으로 매향제가 열리는 곳이 있다. 마을주민들과 지역단체들이 모여 제를 지낸 후 무명천으로 묶은 향나무를 조심스럽게 갯벌로 옮겨 깊게 묻는 의식이 진행되는데 이 과정은 매우 엄숙하고 경건하게 진행된다. 매향의식은 지역,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과 더불어 공동의식을 통한 주민유대형성에도 그 역할을 했다.

남광현 팀장은 “안국사지의 석탑과 석불이 더 유명하지만 실제로 당시 향도들과 백성들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경건하게 여긴 건 매향암각(배바위)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조선시대 안국사지는 이미 폐사된 상태로 고려왕조의 멸망과 조선왕조 개창시기를 거치며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국사지를 찾는다면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삼존입상과 석탑과 더불어 숭배와 전설을 통해 민중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던 매향암각을 찾아보는 것도 안국사지를 즐기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