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충남도립대학교수

[당진신문=김정희]

프리드리히 니체에 의하면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신에 세 가지 변신이 필요하다고 한다. 세 가지 변신 중에서 그 첫 번째는 우리의 정신이 낙타가 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낙타가 사자가 되는 것이고, 세 번째는 그 사자가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변신의 과정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 되는 명백한 실존의 과정이다. 여기서 낙타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횡단해야만 하는 강건하고, 인내력 있는 정신과 “너는 해야만 한다”라는 도덕적 복종을 상징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가지 문제가 있다. 그 문제는 바로 낙타처럼 그냥 견뎌내기만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사막처럼 황폐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낙타는 다시 변신을 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무거운 짐이 필요하지만, 이것을 과감하게 뜯어버릴 수 있는 사자가 되어야만 한다. 여기서 사자는 나를 억압하고 구속했던 모든 굴레를 깨뜨릴 수 있는 자유정신을 상징한다. 동시에 권력과 승리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나는 이것을 하고 싶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과정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위인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사자는 부정의 힘을 상징하기도 한다. 

정치적으로도 동일하다라고 생각한다. 저항이 없는 곳에는 자유가 싹트지 못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비판정신은 파괴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존의 질서와 규범이 현재의 삶과 잘 맞는지 아니면 잘 맞지 않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내부적 반성을 의미하기도 한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끊임없이 저항만 한다고 해서 과연 내가 원하는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 번째 변신의 어린아이가 되어야만 한다. 어린아이는 절대로 심심해하지 않는다. 놀이규칙도 때와 장소에 따라 자기 자신의 마음대로 바꾼다. 또한 소꿉장난을 할 때도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멋진 세계를 계속해서 만들어 낸다. 이것이 바로 어린아이가 상징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이가 들면 누구든지 어린아이가 된다는 그런 개념의 그런 어린아이가 아니다. 여기서의 어린아이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유희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무거운 짐, 영원히 반복되고 끊임없이 돌아가는 삶, 아무런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가벼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하다. 그리고 어떠한 배경도 없다. 계산 또한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끊임없는 긍정의 힘을 의미한다. 또한 어린아이는 순결하고, 하나의 새로운 출발이며, 하나의 유희이고, 스스로 돌아가는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의 힘을 상징한다. 따라서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서는 신성한 긍정의 힘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상실한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명백히 획득할 것이다. 

당신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진정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나요? 당신은 바로 지금 내면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모순과 갈등을 진정 있는 그대로 긍정하시나요?

한탄만 하는 수동적이고, 허무적인 자세보다는 세상의 가치는 우리의 해석에 달려있을 뿐이다 라고 생각하고, 너와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함께 협업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자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직면할 미래세계는 다양한 생각과, 경험과, 사람이 콘텐츠인 융합적 사고가 요구되는 시대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 제가 가장 좋아하게 된 글을 소개한다.


심여공화사(心如工畵師) 능화제세간(能畵諸世間)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아서 능히 모든 세상을 다 그릴 수 있다. 
즉 오늘 이 순간 어떠한 마음을 갖고 세상을 그리며 사느냐가 참으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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