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신문 필진 ‘TALK’ > 전 KBS기자, 수필가, 전 신성대 교수 호 천 웅

나이 들면서 고향 생각이 진해지고는 한다. 지난 봄 어느 날, 집 근처 공원에서 또 향수(鄕愁)가 도졌다. 시인(詩人) 흉내를 내봤다.

< 호숫가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본다.
눈을 감으니 고향 하늘이다. 어렸을 적 그 마을이 보인다.
책보 둘러메고 학교 가는 길, 언덕배기 산길
빨간 꽃, 진달래꽃. 무덤에는 할미꽃...
작은 산새 한 마리 파드득 난다.

진달래꽃 따 먹고 진홍빛 피를 뱉는다.
앞선 동무들 저만치 산 고비를 돈다.
이러다 늦겠다. 퍼뜩 정신이 든다. 냅다 달음 질 친다.

“엄마 저거 뭐야!”
꼬마 아가씨 감탄사에 놀라 퍼뜩 눈을 뜬다.
호수엔 비단 잉어 노닐고 오리들 헤엄친다.
따사한 햇살이 평안하다. 바람이 살짝 물살을 만진다.

어릴 적 고향이 또 그립다...>

그리운 정경들은 한이 없다. 마을 뒷산에 올라 소월의 시를 읊으며 감상에 젖곤 했던 문학소년, 밀물 때 바다에 뛰어들어 맨손으로 새우며 동어 새끼를 잡아 날로 먹던 일, 물뱀을 맨손으로 잡아 여학생들을 놀려대던 개구쟁이...
삶을 찾아 고향을 떠나 있던 어느 해의 일이다. 남매의 아버지가 된 나는 그들을 데리고 고향을 찾았다. 합덕에 들러 투망을 샀다.
고향의 낭만을 맘껏 전수하고 아빠의 투망 실력도 뽐내려는 계산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드디어 고향 포구 오섬 마을에 도착했다.
갯벌에 들어가 투망을 던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선 물맛이 미지근한 게 바다 물맛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물에 걸리는 게 망둥이나 동어가 아니라 비실비실하는 붕어 새끼가 아닌가? 비가 많이 내린 탓이려니 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옛날의 멋졌던 고기잡이 일들, 거룻배 저어 멋지게 바다를 건넜던 무용담 등을 늘어놓는 것으로 구겨진 체면을 감추려고 애를 썼었다.
그런데 저녁 식사 자리에서 산통이 깨지고 말았다.
“서방님 그 똥물에서 무엇을 하셨어요." 친척 형수의 말이다.
당진읍의 인구가 늘고 하수처리가 제대로 안돼서 오수가 내려오면서 옛날에 잡던 고기는 없어 졌다는 설명이었다. 물론 석문 방조제가 들어서기 전의 이야기다.
그 후로도 고향을 찾아 좋은 시간을 갖기는 했지만 낭만과 추억의 무게는 사뭇 가벼워졌던 것 같다.
그런데 고희(古稀)를 넘기니 고향이 더욱 절절하다.
바다 생선이 잡히면 더 좋지만 안 잡힌 들 어떠하며 옛 풍광이 바뀐 들 또한 어찌하리. 얼마 전 고향을 찾아 竹馬故友들과 어울렸다.
소주잔을 부딪치며 가슴을 털었다. 그냥 옛날 얘기, 그냥 사는 얘기, 그냥 음담패설도 신이 났다.
영양가 없는 말들에도 정말 신명이 났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짐했다.
"우리 죽기 전에 몇 번이나 더 만날 것인가? 그럼! 그러니 자주 만남세." 고향이 시로 승격해서 좋다고들 하는데 市면 어떠하고 面이면 어떠한가. 그냥 고향이기에, 그냥 죽마고우이기에 좋다.
그래서 더 자주 만나기로 했다. 버스 타면 금방 고향 아닌가? 한잔하려면 운전은 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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