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북한이라는 망망대해에서 등대와 같았다...
한국은 목숨을 걸만큼의 가치는 충분히 있는 나라라는 생각, 그 생각은 변함없다”

새터민 유현주 강사(41)
새터민 유현주 강사(41)

[당진신문=배길령 기자] 지난 21일 한국자유총연맹 당진시지회(회장 김현기)는 당진송악고등학교와 당진정보고등학교에서 통일을 주제로 한 강의를 진행했다. 2006년부터 13년간 기업, 관공서, 학교 등 2,000여회 이상 강연을 이어온 새터민 유현주 씨(41)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유현주 씨는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2004년에 탈북했다. 함경북도 예술선전대에서 기악팀장과 방송원(아나운서)으로 활동하다가 한국으로 오면서 현재 미래사회교육원 전문강사와 경기지방경찰청 보안협력위원회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또한 통일메아리악단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채널A의 남·북 화합소통프로그램인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고정출연자로 방송활동을 겸하고 있다.

●강연만 13년째라고 들었다. 강연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강연을 하게 된 건 어느 날 갑자기였다. 자유총연맹에서 북한에 대해서 강의를 해줄 분을 추천해달라고 전해들었다. 제가 추천을 받게 되었고 북한사회분야를 처음으로 강의를 하게 됐다. 시작은 그랬지만 계속 해올 수 있었던 계기는 강연을 하면서 차츰 사명감이 생겼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젊은 친구들이 너무 북한에 대해서 모르고 있어서 같은 뿌리의 민족으로 통일의 필요성과 통일 후에 겪게 될 남북의 인식차이를 좁히는 역할을 미약하게나마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은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나?
흔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양의 모습이 북한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양은 잘 만들어진 선전용 모델하우스라는 점을 모르는 분들이 많다. 이처럼 평양이 아닌 북한의 실상과 북한교육실태, 탈북민의 시각으로 바라본 대한민국 등 경험을 바탕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고난의 행군이던 96년도에는 북한주민들이 많은 목숨을 잃었다. 평양은 간부와 노동자 사이의 빈부격차는 존재해도 식량배급은 잘 나왔지만 대부분의 북한주민들은 자력으로 살아남아야했다. 솔방울과 나무를 베어서 불을 때우며 생활했기 때문에 어느 동네든 민둥산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새터민 유현주 강사가 지난 21일 당진송악고등학교와 당진정보고등학교에서 통일을 주제로 한 강의를 진행했다.
새터민 유현주 강사가 지난 21일 당진송악고등학교와 당진정보고등학교에서 통일을 주제로 한 강의를 진행했다.

●최근에 새터민 모자가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인가?
안타깝다. 탈북으로 목숨까지 걸었던 것을 알기에 더 안타깝다. 사실 한국에서 새터민을 위한 제도나 지원이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또 나이가 많은 분들도 탈북 후 한국에서 취직이라든가 생활을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각지대에서 소외를 느끼는 분들에 대한 정책이나 보호는 앞으로 더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오랜 분단으로 어쩔 수 없이 따라붙는 꼬리표다. 북한 주민이었던 ‘우리’는 선거 때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북한과의 외교상황에 따라 그저 이방인 또는 탈북민일 뿐이라는 시선을 받을 때가 가장 힘들다. 필요한 순간만 대한민국 국민으로 봐주는 것. 그게 가장 힘든 점이다. 그런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연을 하면서 느꼈던 점이나 꼭 전하고 싶은 말은?
한국은 북한이라는 망망대해에서 등대와도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생활이 녹록치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15년간을 한국에서 살면서 느꼈던 점은 지난 날 목숨을 걸만큼의 가치는 충분히 있는 나라라는 생각, 그 생각은 변함없다.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은 두 아이를 한국에서 낳은 것이기 때문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마나 축복받은 땅에서 태어났는지 모를 때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일상도 행복으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자라나는 미래의 아이들이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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