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 '심경숙' 씨

[당진신문=배길령 기자] 우리는 참 표현에 서투르다. 남을 칭찬하는 일에 인색하고 타이밍을 놓쳐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입 간지러워 참을 수 없는 착한 당진 사람들의 선행이 보인다. 내 고장 당진에 살고 있는 좋은 분들을 알게 된 이상 지나칠 수 없다. 이에 본지는 입 간지러워 참을 수 없는 착한 당진 사람들의 선행을 칭찬해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꽃을 좋아해 집 앞 가득 꽃나무를 가꾼다는 심경숙 씨(73)가 아직 피지 않은 노란백합 옆에서 활짝 웃고 있다.
꽃을 좋아해 집 앞 가득 꽃나무를 가꾼다는 심경숙 씨(73)가 아직 피지 않은 노란백합 옆에서 활짝 웃고 있다.

강원도 홍천이 고향인 심경숙 씨(73)는 서울에서 남편을 만나 당진에서 가정을 꾸렸다. 14년째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는 그녀는 주말이면 고대와 면천의 요양시설을 찾아 목욕봉사를 한다.

“하는 일이 요양보호사다 보니까 목욕시켜드리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주일이면 어르신 두 세분을 목욕시켜드리고 같이 노래하고 이야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죠”

경숙 씨가 목욕봉사를 나간 건 작년부터다. 우연히 들린 요양시설에서 어르신들이 하는 일 없이 가만히 계시는 모습을 보고 말을 걸었던 경숙 씨. 그날 이후로 어르신들의 말동무가 되고 목욕봉사로까지 이어졌다. 주기적으로 날짜를 정해 방문하는 것도 아니고 한 번씩 시간이 날 때 들리는 것뿐이라고 얘기하는 경숙 씨가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건 스스로의 삶이 너무 고된 이유였다.

“사실 지금껏 교회를 다니면서도 한 번도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어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나서서 돕는다는 게, 나는 이미 내 삶만으로도 충분히 벅찼으니까요. 하지만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봉사를 시작하면서 내 삶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알겠더라고요”

아들의 사업부도로 원래 살던 집을 넘기고 떠나왔다는 경숙 씨는 자신의 삶이 한탄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아들 혼자 빚을 어떻게 갚겠어요. 나라도 나서서 도움이 되어야지. 남편은 교통사고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으니까... 식당일도 하고, 이것저것 부업도 하고, 밤새 간병일도 하고 그렇게 보냈어요”

경숙 씨는 20년간 시댁어르신을 모시고 이사 온 집에서는 친정 부모님을 보살피면서 지냈다. 힘들었던 적도 많았지만 오래도록 모셨던 양가 부모님은 경숙 씨의 삶에 선물을 주고 떠나셨다고 말했다.

“시댁어르신과 친정 부모님을 오래 모시다보니까 어르신들이 어디가 불편하고 어떻게 해드려야 편한지 그냥 몸이 습득해 버렸나봐요. 그래서 어르신들이 제가 찾아가면 그렇게 반갑다고 맞아주세요. 제 손이 약손이라고 주물러드리면 시원하다 그러시고, 또 금방 빨리 찾아오겠다고 하면 천천히 오라고, 일찍 오면 사고 난다고 더 쉬었다 오라고 말씀하세요”

버스비가 아까워 산을 넘고 네다섯 정거장 정도는 거뜬히 걸어 다니며 비가 오는 날도 버스한번 안타고 일을 하러 다닌다는 경숙 씨는 길에서 만나는 어르신들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다.

“저도 나이가 많아 잘 알지만 어르신들은 항상 본인의 작은 몸에 여러 개씩 보따리를 짊어지고 다니시잖아요. 그걸 보고 어떻게 지나치겠어요. 내가 더 젊고 힘도 세고 짐도 많지 않으니까 가시는 곳까지 들어드리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요”

일흔 셋이지만 삼시세끼 든든히 먹어 아픈 곳 없이 튼튼하다고 자랑하는 경숙 씨는 앞으로도 봉사활동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웃었다.

“제가 갈 때마다 어르신들이 손 꼭 잡고 ‘고맙다, 고맙다’ 여러 번 손등을 두드려주세요. 그럴 때 마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그저 다 해드리고 싶어요. 그 분들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저뿐이니까, 저를 기다려주면 계속 가야죠. 제가 아직 많이 튼튼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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