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신문=배길령 기자] 우리는 참 표현에 서투르다. 남을 칭찬하는 일에 인색하고 타이밍을 놓쳐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입 간지러워 참을 수 없는 착한 당진 사람들의 선행이 보인다. 내 고장 당진에 살고 있는 좋은 분들을 알게 된 이상 지나칠 수 없다. 이에 본지는 입 간지러워 참을 수 없는 착한 당진 사람들의 선행을 칭찬해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남편 박종희 씨(68)와 김숙자 씨(66)
남편 박종희 씨(68)와 김숙자 씨(66)

"시집와서부터 같이 지낸 이웃들이니까... 그냥 마실 나가는 거예요”

고대면 진관리 관동마을의 홀로지내는 어르신은 한집건너 한집이 무색할 정도로 많다. 스물넷에 시집와 지금까지 42년을 이 마을에서 지냈다는 강숙자 씨(66)는 이웃어른을 찾아뵙는 일이 당연하기만 하다.

숙자 씨를 며느리로 맞은 하향기 어르신(88)은 동네 이웃들이 항상 “1등 며느리”라고 칭찬한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면서 자랑했다.

모내기가 끝난 요즘은 가끔 밭에 풀을 매러가는 일 말고는 없다는 그녀의 하루는 특별할 것이 없다. 아침에 교회를 나가는 걸음으로 이웃 어르신 댁을 차례차례 들린다는 그녀는 바쁠 때는 드문드문 방문해서 크게 칭찬받을 일도 없다고 이야기했다.

“정말 잘하는 것도 없어요. 그냥 놀러가듯이 가서 어른들 이야기 들어주고, 집 청소 좀 해주고, 같이 음식 나눠먹고 그게 다예요”

거실에 걸린 단란한 가족사진 속 손주와 사위를 설명하던 숙자 씨는 안방으로 건너와 또 다른 가족사진을 보여줬다. 딸이 시집가기 전 찍었다는 가족사진에는 숙자 씨의 잘생긴 아들이 있다. 18년 전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털어놓는 숙자 씨는 지금은 세월이 흘러 아무렇지 않다고 얘기했지만 그녀는 마음 편하게 웃어본 적이 없다.

“저 가족사진을 찍을 때 왜 그렇게 아들이 부랴부랴 사진을 찍자고 그랬는지 몰라요. 저때만 해도 아들에게 그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우리 애 목소리는 그날 이후로 들어보지도 못하고, 이제는 아들이 음식을 씹어 삼키는 것도 어려워서 배에 줄을 연결해서 공급하고 있어요”

담담하게 아들의 교통사고를 이야기하던 숙자 씨. 그녀가 마실을 나가게 된 것은 그때부터다. 사고 후 1년 동안은 병원에서 아들 곁을 지켰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마저도 힘들어 간병인을 두고 집으로 왔다고 고백하는 숙자 씨는 어머니로서 스스로를 탓하고 있었다. 때때로 논이나 밭일거리가 없는 날이면 집에 있는 자신을 견딜 수 없었다는 그녀는 홀로지내는 이웃 어른들을 찾아뵙기 시작했다. 

숙자 씨가 찾아뵙는 이웃어른들은 마을경로당으로 나서지 못하는 어르신들이다. 마을에 잔치가 있을 때면 마을회관으로 나가서 마을 일을 돕지만 대부분은 경로당으로 걸음조차 못하는 어르신을 돕는 것이 숙자 씨의 마실이다. 아픈 어르신이 계시면 병원으로 모셔가고 집으로 오면 죽을 쑤어 주기도 한다는 숙자 씨에게 어르신들은 고맙다고 자신들이 가진 것에서 설탕 한 봉지를 건네기도, 커피 한 묶음을 건네기도 한다.

“아흔을 훌쩍 넘긴 어르신도 계시고 치매를 앓고 계시는 어르신도 있어요.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셔서 마을경로당으로 나가시지 못하니까 하루 종일 얼마나 심심하시겠어요. 나도 집에 있으면 심심하고 그래서 그냥 놀러가는 거뿐이죠”

이 동네를 떠날 일도 없다는 숙자 씨는 앞으로도 어르신에게로 향하는 마실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제철마다 밭에서 나오는 감자, 마늘쫑, 호박, 오이, 상추, 고구마 순, 머위 등을 반찬으로 가져다 드리고 한 번씩 떡을 해서 나눠먹고 도토리를 주워다가 묵을 쑤기도 하면서.

“시골에서 나오는 것들이니까요. 뭐 사다주는 것도 아니고 집에 생기는 음식들을 나눠먹는 거니까 크게 부담스러운 것도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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