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당진시지회 ‘천강환’ 지회장

[당진신문=배길령 기자]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애국심을 되새기는 현충일이 자리한 6월, 충무무공훈장을 받은 천강환 무공수훈자당진시지회장을 만나 그가 전하는 나라사랑이야기를 들어봤다.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당진시지회 ‘천강환’ 지회장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당진시지회 ‘천강환’ 지회장

지난 6월 4일 청와대에서는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오찬이 열렸다. 천강환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당진시지회장은 충남대표로 초청되어 청와대를 방문했다.

“청와대에서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서 전국의 국가유공자분들을 초청했어요. 충남에서는 저 한명 뿐이었고요. 극진히 대접을 해주시고 대한민국이 국가유공자분들 덕에 선진국대열에서 잘 살고 있다고 말씀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해방둥이로 태어났다는 천강환 지회장은 올해로 74세, 그가 무공훈장을 받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50년도 더 된 67년도였다. 67년도에 군에 들어가 훈련병을 갓 뗀 이등병으로 베트남으로 향하는 배에 올라타게 됐다는 천 회장은 배안에서 일병이 되어버렸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때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갔어요. 나중에 1년 지내니까 베트남파병을 지원해서 온다 하더라구요. 근데 내가 갔을 때만해도 지원은 없었고 배를 타고 가는데 베트남 파병에 이등병은 안 된다고 해서 배 안에서 일병이 되어버렸잖아요”

기갑연대의 연대를 창설하면서 2개 사단이 벌이는 작전을 수행하러 갔다는 천 회장은 일명 주월사 작전의 공으로 충무훈장을 받게 되었다.

“날씨는 덥지. 뭐하는 지도 모르고 그렇게 1달간 산속을 헤매고 다녔어요. 산속을 돌아다니면서 월맹정규군 훈련소를 매복하고 다녔죠. 그러던 어느날 밤에 경계를 서다 적들을 발견하고 전투를 벌여 승리했습니다”

이 작전의 공으로 천 회장은 태극, 을지, 다음 차례인 충무훈장을 달았다. 3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8남매의 장남으로 가족들을 책임져야했다는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새벽이면 불쑥 찾아오는 괴로운 환상에 천 회장은 마음의 전쟁을 겪어내야만 했다.

“전역하고 3년을 술로 보냈어요.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거면 같이 웃고 떠들던 전우가 금방전만해도 살아있었는데 죽고 없는 게 전쟁터에요. 솔직히 적군이라 해도 사람이잖아요. 똑같은 사람인데 그때는 사람을 죽인다는 생각을 하면 살아나올 수 없어요. 우리 중대를 살린다는 생각으로 버텨냈어요”

이제는 세월이 흘러 지나간 일이 되어버렸지만 천 회장은 무공훈장을 받은 국가유공자로서 행동 하나하나 함부로 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또 일흔의 나이를 넘겨 몸은 녹슬었는지 몰라도 나라를 위한 마음은 아직도 녹슬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나라가 있어야 우리가족도 행복할 수 있는 거니까요. 앞으로도 나라를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이 마음을 바칠 수 있습니다. 일흔의 할아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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