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들의 길라잡이 김순영 씨

[당진신문=배길령 기자] 우리는 참 표현에 서투르다. 남을 칭찬하는 일에 인색하고 타이밍을 놓쳐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입 간지러워 참을 수 없는 착한 당진 사람들의 선행이 보인다. 내 고장 당진에 살고 있는 좋은 분들을 알게 된 이상 지나칠 수 없다. 이에 본지는 입 간지러워 참을 수 없는 착한 당진 사람들의 선행을 칭찬해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길라잡이 김순영 씨.
북한이탈주민들의 길라잡이 김순영 씨.

“감사하게도 저와 가족들은 아무런 탈 없이 한국으로 건너 와 서울에 정착했어요. 그리고 서산에서 남편을 만나 당진에서 생활을 시작했죠”

함경북도 청진, 북에서 태어나 21년 전 한국으로 온 김순영 씨(44)는 북한이탈주민이다. 평범한 주부로 지내왔던 그녀에게 2015년도는 조금 특별한 일이 생겼다. 매해 추석과 설이면 당진경찰서에서는 북한이탈주민들을 위로하고 생필품을 전달하는 위문행사가 있었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저는 가족이 있고 생활이 어렵지 않아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해는 경찰서 주변에 살아서 담당 경찰관이 마주칠 때마다 행사에 놀러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냥 한번 가봤어요. 가봤더니 생각보다 당진에 북한이탈주민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한 60명 정도 됐던 거 같아요”

김순영 씨의 봉사는 뜻밖인 곳에서 시작됐다.

“그 친구들이 저에게 좀 도와줄 수 없겠냐고 물었어요. 먼저 와서 정착했으니까. 자신들은 하나원에서 3개월만 교육을 받아서 사실 한국의 문화도 낯설고 같은 말을 쓰고 있어도 소통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이북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은 순영씨에게 아이의 학교부터 병원, 금융, 실생활 전반적인 것에 대해 도움을 청했고 어떤 일이든 나서서 도와주던 그녀는 서로의 어려움을 아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서로의 가족이 되어 도와주는 ‘하나회’를 만들었다.

“저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부모님과 언니, 동생한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들은 가족이 옆에 없으니까요. 혼자거나 또는 아이와 있거든요. 충분히 이해가 갔어요. 갑자기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 뚝 떨어지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서 도움을 받아야하는지 어려운거죠. 한동안은 거의 주말도 없이 담당경찰관과 남편이랑 같이 알아봐주고 어려운 일 있으면 나서서 도와드리고 했어요”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고 또 개인적인 시간이 부족해 힘들고 지친적도 많았다는 순영 씨가 그럼에도 계속 지원해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겪어온 이야기를 들으면 지나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오기 전 그분들은 인권이 없는 곳에서 지내다가 왔어요. 정말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탈출만 10번 넘게 한 분도 계셨고 수용소에서 한국으로 오는 차례가 밀릴까 젓가락으로 임산부 배를 찌르는 상황을 목격했다는 분의 이야기는 정말 상상도 못했죠. 그때에 비하면 여기서는 힘들어도 천국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데... 사실 그분들이 받았을 상처와 트라우마가 얼마나 크겠어요. 생필품지원도 지원이지만 그분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순영씨는 원래 나서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데 본의 아니게 하나회를 더 키우게 되어버렸다고 웃으며 설명했다.

“저 혼자 개인적으로 도와서는 그분들의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모르는 분야도 많다보니까 법, 세무, 금융, 교육, 종교 등 관련종사자분들을 찾아뵙고 도움을 부탁드렸어요. 그렇게 하나회가 ‘당진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센터’가 되었죠”

‘하나회’에서 지원센터로 이어진 그녀의 봉사가 현재는 남북평화예술단으로까지 이어져 북한이탈주민들과 함께 지역 어르신들에게 공연을 다니게도 됐다며 순영씨는 뿌듯한 마음이다.

마실노인복지센터(송산면)에서 공연하는 남북평화예술단.
마실노인복지센터(송산면)에서 공연하는 남북평화예술단.

“사실 센터에서 지원하는 분들은 엄청 고생한 분들이라 제가 늘 도와야만 하는 위치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분들이 스스로 봉사가 무엇인지, 나누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재능기부로 함께 공연을 하고 싶다고 하는데 너무 뿌듯했어요. 이제 그분들도 알거든요, 봉사를 다니면 기분이 좋다는 것을. 제 개인적으로는 공연을 갈 때마다 하나의 작은 통일을 이룬 기분이라 좋죠”

요즘은 스스로가 북한이탈주민으로서 그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하는 순영 씨는 현재 운영위원 20명과 정착도우미 10명의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센터가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도록 희망한다.

“제가 더 열심히 해야죠. 통일을 대비한다는 마음으로 지역사회에 시스템이 구축될 때까지요, 어쩌면 저한테 자꾸 기회를 준다고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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