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시선展’ 당진 다원갤러리에서 6월 13일까지 개최

“매일 눈뜨고 맞이하는 아침이 너무 괴로웠어요. 그래서 빨리 꿈을 꾸고 싶었죠. 꿈속에서 나는 움직이는 사람이니까...”

[당진신문=배길령 기자]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축구선수로 뛰었던 박정 씨(46)의 삶은 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991년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하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목 아래가 모두 마비됐다. 이후 처지를 비관하기만 했던 그의 삶에 의미가 되어 준 것은 그림과 그를 응원해주는 가족의 따뜻한 사랑이었다.

“어느 날 누나가 그리는 그림을 입에 붓을 물고 따라 그려봤습니다. 그때가 사고이후 처음으로 부모님이 기쁘게 웃은 순간이었어요. 그 이후 그림에 빠지고, 미대도 진학했습니다. 아마 가족들과 그림이 없었다면... 내가 살아 있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그렇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93년도에 처음 붓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박정 화가는 자신의 장애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점차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손이 아닌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는 입에서 붓을 놓지 않았고 피나는 노력 끝에 각종 미술대전에서 입상하며 실력도 인정받았다.

현재 그는 주로 인물화를 그린다. 원래부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사고 이후 집에 혼자만 있던 시간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고픔으로 찾아왔다. 그렇게 그는 자연스럽게 ‘사람’을 그리기 시작했다.

박 화가의 작품 속 인물은 정면과 옆, 뒷모습 등 다양하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각 작품의 이야기와 분위기, 감정 전달이 더 풍성해지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저도 앞모습을 많이 그렸는데요. 최근에는 뒷모습을 주로 그리고 있어요. 정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표정과 눈빛이 보여서 감상하실 때 표정을 살피면서 감상의 틀에 갇히기 쉽지만 뒷모습일 때는 인물의 이야기나 분위기에 대한 감성이 더 풍성해질 수 있거든요”

그림으로 달라진 삶...다시 찾은 제 2의 인생
기자가 직접 본 박정 화가의 작품은 입으로 그렸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인물의 표정, 눈빛, 분위기 하나까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하루 평균 8~10시간을 몸이 버텨주는 만큼 한 자리에서 작품에 몰두한다는 박 화가는 유화의 특성상 여러 작품을 함께 진행한다. 한 작품마다 그가 들이는 열정은 미술용 세필(細筆)부터 미술용이 아닌 철물점의 커다란 붓까지 작품표현에 필요한 느낌을 전달하는데 입으로 물수 있는 모든 도구를 사용한다. 

관람객의 시선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는 박정 화가의 ‘또 다른 시선’展은 6월 13일까지 당진 다원갤러리 2층에서 관람객들의 시선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은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잖아요,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시시각각 변하죠. 비슷한 느낌을 가질 수는 있지만 관람객들이 보는 시선에 따라 작품은 다양한 감정을 가질 수 있어요. 어떤 분은 까닭모를 슬픔을 느끼고, 어떤 분은 희망을 느끼고요. 이번 전시회가 관람객에게 의미 있는 또 다른 시선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림으로 달라진 삶을 살고 있다는 그는 더 이상 괴로움을 잊기 위한 꿈꾸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면 전시회를 열 수 있고 좋아하는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어 기쁘기 때문이다.

“장애를 가진 화가가 아닌 여느 화가로 바라봐주시길 부탁한다”고 당부하는 박정 화가는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전시회 준비를 하는 화가로서의 생을 빛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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