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특수(特需)가 한창이다.
모처럼 국민들이 같은 방향을 보며 함께 박수치고 함께 즐거워하고 있다. 때로는 함께 한숨 쉬며 아쉬워하기도 한다.


이 어인, 참으로 얼마 만에 보는 생경한 국론통일(?)의 장인가. 이유 여하야 나변(那邊)에 있건 그 순간에야, 그 순간만이라도 최소한의 정서적 동참이나 정서의 묵시적 통일쯤은 되고도 남음이 있을 터이다.


올림픽이라는 지구촌 잔치에서 누리는 특수야 그 종류도 다양하고, 그 양과 질도 천차만별일 것이지만 모두에게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잔치에 배역을 맡아 출연하는 선수 들이 겪어온 인고의 시간들은 결코 가볍지도 짧지도 않다.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온갖 고초를 다 참고 견디고 이겨낸 결과물로서 그들은 무대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의 그들의 가치는 달라진다.

부익부 빈익빈의 법칙도 철저히 지켜진다.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은 같은 색깔 같은 농도인데도 그 값이 달라지는 것이다. 일등 지상주의가 가져오는 금메달 사대주의와 인기·비인기 종목으로 구분되는 차별주의가 우열을 극명하게 갈라놓는다.

더구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는 없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국력도 우리국민의 수준도 국제적 위상도 달라졌다. 유일한 저력으로 헝그리정신이 발휘되던 시절, 가난을 벗어나는 방편과 통로로 눈물과 땀을 흘리던 때와 같을 수는 없다.

승패나 메달의 색깔에 지나친 구분을 두지 말아야 한다.
페어플레이에 갈채를 보내고 스포츠정신을 높이 사주어야 한다. 어떤 대회건 함께 출전한 선수들은 결과에 상관없이 공평하고 알맞은 대접과 예우를 해주어야 한다.


금메달을 따서 부와 영광을 함께 안아야 하겠다는 욕심과 바람이야 선수로서 당연히 가져야할 포부와 자세로써 경기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터이다. 그러나 지나친 국민적 기대와 채근이 부담이 되고, 실패 후에 쏟아질 질책과 비난이 걸림돌이 되어 제 실력을 발휘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패배했지만 최선을 다 했다면, 아름다운 패배로써 박수와 위로를 보내고 새로운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할 것이다.


은근과 끈기의 민족성을 자랑하는 우리, 쉽게 일희일비하는 가벼움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의 위상에 걸맞은 성숙한 국민의식을 보여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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