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미술관 속 새로운 이야기
당진을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미술관, 그 고요한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다.


[당진신문=배길령 기자] 눈이 한차례 내린 지난 20일, 미술관으로 가는 버스 밖 풍경은 설레기 충분했다. 당진시 순성면사무소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순성미술관은 면사무소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어렵지 않게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다. 

편안한 미술관, 소탈한 미술관을 목표로 그 이름도 “그냥 편하게 부르기 쉬우라고” 순성미술관이다.

순성에서 태어난 어린 소년은 학업을 위해 마을을 떠났다가 어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농촌 지역인 이곳에서 성공의 길은 공부뿐이었다던 이병수 관장. 아버지의 땅으로 다시 돌아와 건물을 세웠다. 이 마을에 터전을 잡은 지 25년, 그는 전공과는 관련이 없는 어린 시절 마냥 좋아했던 그림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서울에서 내려와서 예식장과 식당을 했어요. 한 20년 정도 했나 봐요. 그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미술관으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전공자가 아닌 예술가라는 사실에 의기소침했던 이병수 관장은 제대로 된 미술학도가 되고 싶어 대학원진학을 결심하고 재작년에 학예사증을 취득했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느끼는 오늘이 좋다는 생각으로 미술관을 개관했다.

현재 순성미술관은 지역 예술가뿐만 아니라, 전국의 여러 예술가들의 전시를 무료대관해주고 있다. 2월 진행 중인 전시는 전은실 도예가의 아기자기한 생활 공예품이며 다음 달은 김종렬 작가의 펜화, 4월부터는 정찬호 작가의 일러스트드로잉이 전시될 계획이다.

이병수관장이 요즘 푹 빠져있는 작업은 ‘대체할 수 없는 것’을 찾는 작업인데 그 중 하나가 ‘지문(指紋)에서 형용사를 찾는 것’이다.

“형용사라하면 대부분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들인데 산업화되고, 도시화 된 현대 사회에 대체할 수 없는 것은 사람의 감정뿐이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인식하고 있는 과학과 사회의 언어는 명사죠. 사실은 어떤 존재나 형상으로부터 명사가 붙여진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사에 갇혀서 사고를 합니다. 하지만 형용사적인 표현을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다채로운 지.. 아름답다, 슬프다, 기쁘다, 괴롭다, 예쁘다 등등”

그는 또, 자연으로 돌아와 동식물을 관찰하면서 ‘식물과 사생활’이라고 붙인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가 하는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식물 박사와 함께 식물 하나하나를 생생하게 살펴보는 기분이 든다.

“솔씨는 씨앗보다 날개가 훨씬 커요. 그렇게 멀리 날아가서 땅에 뿌리를 내리는 거죠. 나팔꽃은 아침과 저녁을 우리가 알기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죠, 또 파리지옥은 꼭 3번을 두드려야 문을 닫아요. 자연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사람만큼 경이로운 순간이 많아요. 미국에 슈퍼메타세콰이아는 그 높이가 100m나 되는데 솔방울이 그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 떨어져도 씨앗이 나오지 않아요. 7-80도 이상의 열이 있어야만 솔방울이 갈라지기 때문에 벼락이 떨어져서 산불이 나면 오히려 씨앗을 퍼뜨릴 수 있는 거죠. 거기다 솔방울 껍질의 두께가 10cm이상인데다 물을 가득 머금고 있어서 불타지 않는대요. 신기하죠?”

미술관 곳곳에 붙은 폐 소화기를 이용해 만든 개미의 무리는 순성미술관 만의 자연 친화를 보여준다. 특히 순성미술관은 바로 옆에 순성초등학교가 있어서 더 즐겁다.

“아이들이 놀이터 삼아 놀러 와요, 제가 미술관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도 미래를 키우는 거죠. 어릴 때부터 다양한 것들을 보고 느끼고 꿈을 키우는 거죠. 그런 문화적 기반에 순성미술관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의 그림, 작품을 완성하는데 한 사람의 삶과 생각이 묻어나야만 풍부한 작품을 그려낼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미술관을 찾는 모든 관람객은 이병수 관장에게는 또한 권의 책이다. 평소 책을 즐겨 읽는다는 그는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문학 그리고 마을과 미술관의 관계에도 관심이 지대하다.

“어릴 적에는 먹고 살기를 문제로 많은 어르신들이 예술을 접할 기회가 없었어요, 어르신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작은 음악회도 열고 노력중이죠. 이제 조금씩 흙탕물이 되어가는 거 같아요, 늘 농촌과 예술은 물과 기름 같은 존재라 섞이기가 상당히 어려웠는데.. 그래도 여러 번 음악회에 참석해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미술관에 드문드문 찾아주시는 분들도 계셔서 요즘은 조금씩 색이 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꽃피는 봄에는 순성미술관의 행복이 더 짙어질 계획이다.

“올 봄에는, 이미 봄이 오고 있지만 미술관 옆에 셀프카페를 하나 마련해보려고요. 전시도 보고, 책도 보고, 커피도 마시면서 관람객 분들이 주인인 공간을 만들 생각입니다. 테이블이며, 선반 가구들도 직접 만들고 있어요. 야외에도 그네와 벤치를 설치해서 실외에서도 충분히 편하게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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