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힘이 모여 역사를 움직인다는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의 메시지
작은 힘이 모여 역사를 움직인다는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의 메시지

[당진신문=이선우 작가] 새털같이 많은 날 아니 쇠털같이 많은 날 가운데 보름쯤 지난 게 호들갑 떨 일은 아니지만 하필 새해 새달이다.

뭐 한 것도 없는데 벌써 보름이나 지났다고?! 작가협회에서 보내올 신년 다이어리를 기다리며 들떠 있던 연말을 지나 이제 진짜 새해가 됐는데 아뿔싸. 아이들 방학이 딱 맞물려 해가 바뀌었다.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방학에 돌입했던 둘째가 1월 첫 주를 지나 어린이집에 출근을 시작하며 어미인 나에게도 숨통이 트였다.

초딩생인 큰아이는 집에 두고 집을 나섰다. 지난 8일부터 해나루시민학교에서 ‘어르신자서전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새해 첫 활동으로 무척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자화자찬 모드 풀가동. 그러나 이실직고 하자면 처음 사업 제안을 받았을 때는 망설였다.

다른 지역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만해도 당진의 바로 이 기관에서 사업을 펼쳐볼 계획을 세웠던 적도 있다.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먼저 자서전쓰기지도사 과정을 수료하게끔 이끌어내고 매년 새로운 어르신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서전쓰기를 진행해보겠다는 원대한 계획!

삶은 곧 경험이고 한순간을 넘어서면 모두 과거가 된다. 그 과거를 돌아보고 의미를 통합하는 시기는 노년기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진다. 성공 뿐 아니라 실패까지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삶은 재구성되고 그 자체로서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살아갈 미래보다 살아온 과거가 더 긴 노인들에게 지나온 삶의 편린들을 끄집어내고 글로 기록하는 일은 그래서 특별하다. 이 특별한 일을 해내기 위해선 함께 할 자서전쓰기지도사들을 양성해야 한다. 어르신자서전쓰기의 경우 1대 1로 전담마크 할 지도사들이 절대적이다. 차후 가편집까지 맡아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막상 현실은? 두둥! 기관의 특성상 무보수 자원봉사라는 점은 익히 예상했던 바지만 함께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료를 양성해낼 수도 없다니. 당장 내년 5월 출판기념회를 목표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어르신들과 이미 라포가 형성되어 있는 선생님들이 지도사로 자원해주셨다는 점이다. 약간의 모험이긴 하지만 결정을 미룰 수는 없었다. 새해가 곧 시작될 즈음이었다.

2018년을 사흘인가 남겨두고 서울에 다녀왔다. 몇 군데 방문하는 일정 중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식민지역사박물관도 포함되어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식채널e’를 제작할 당시 임종국 선생 편을 만들며 인연이 닿았던 곳인데 외려 당진에 내려와서 더 친근해졌다고나 할까.

지금의 민족문제연구소를 있게 한 임종국 선생은 평생을 두고 친일연구를 하느라 정작 자신의 생은 돌보지 못한 비운의 작가다. 컴퓨터도 없던 시절 먼지 가득한 서고에서 일제 관보 35년치(2만 장 이상)를 모두 복사하고,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10년치를 직접 손으로 베껴 기록했다. 그가 남긴 친일 인명 행적 카드 1만5천 점과 문헌들은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이십년 만에 <친일인명사전>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2017년쯤인가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세우기 위해 기금을 모은다는 소식에 아이 이름으로 작은 돈을 기부한 적이 있다. 건물 입구에 세워진 동판에는 기금을 보낸 수많은 이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아이 이름을 찾아가며 동판을 훑어보다 건물로 들어서니 임종국 선생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중 눈길을 끈 것은 2005년 보관문화훈장에 추서되었을 때 받았다는 한복. 주인 없는 한복 앞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작은 힘이 모여 역사를 움직인다는,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의 메시지가 무슨 계시라도 되는 양 눈앞에 아른거리는 새해 새 달. 망설여지는 모든 것들을 작심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날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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