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자서전 쓰기를 진행하며

[당진신문 이선우 객원기자] 얼마 전부터 옆동네 한 노인복지관에서 진행하는 어르신 자서전 쓰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지도교수님 한 분과 자서전쓰기지도사 2급 과정을 이수한 선생님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젝트다. (인근 고교 동아리 학생들도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며 큰 도움을 주었다.)

평균연령 80세 어르신들과 만난 첫 자리, 먼저 자아존중감과 우울증 척도를 검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서전 쓰기 과정이 어르신들의 감정 상태에 과연 얼마만큼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점검하기 위해서다. 한글을 편히 읽으실 수 있는 몇 분 외에는 일대일로 앉아 문항 하나하나를 읽어드리며 검사를 진행했다. 나는 70대 중반의 할아버지 옆에 앉았다. 성함과 몇 가지 인적사항은 본인이 직접 쓰셨지만 문항 하나하나를 읽어나가는데 어려움이 있으셨다. 읽어드려도 괜찮겠냐고 먼저 여쭙고 하나하나 짚어 내려갔다. 차마 읽어드리기 민망할 만큼 부정적인 답변이 이어졌다. 이 어르신은 이후 자서전 쓰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라도 진행해드리겠노라 의견을 전달했지만 고사하셨다.

어르신들이 공통적으로 겪었던 어린 시절의 전쟁이나 가난의 기억은 어렴풋한 엄마의 추억과도 닿아있고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아픔과도 이어져있다. 없는 집에 시집 와서 앓아 누운 남편 대신 평생 일만 하며 살아왔다는 한 할머님의 이야기를 받아 적을 때는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출생과 결혼, 첫 아이를 출산했을 때 정도를 더듬더듬 이야기할 뿐, 특별할 것 없는 당신의 한 평생을 되짚어보는 서글픈 눈빛을 봐버린 탓이다. 우리나라 노인 우울증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고, 65세 이상 노인자살률이 2009년부터 6년째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바로 지금 내 앞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어 착잡했다.

어릴 적 살았던 집을 생각하며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려보는 시간엔 대부분 아이처럼 즐거워하셨다. 하지만 먼저 떠나보낸 자식이나 동생, 남편의 이야기를 꺼내보려 하면 아예 입을 닫아버리기 일쑤. 마음 아파서 생각조차 괴로운 그 일들을 왜 자꾸 물어보냐고 손사래를 치셨다.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꺼내서 탈탈 털어 말리자고, 그래야 덜 아프다고, 이렇게 저렇게 설득하고 위로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못 다한 말들을 전하는 편지쓰기 시간도 가졌다. 쓰려면 산 사람한테나 쓰지 읽지도 못할 죽은 사람한테는 안 쓰겠다는 ‘강경’한 반응을 보인 분도 있다. 그 와중에 어느 할머님이 평생 고생만 시키고 먼저 간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못해보고 먼저 보내 미안하다는 편지를 삐뚤빼뚤 힘겹게 써내셨다. 그 할머님을 인터뷰했던 선생님의 눈물 섞인 낭독, 그 삶에 대한 먹먹한 공감... 어르신들이 모두 돌아가고 이어진 회의 시간은 그렇게 울음바다가 되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밖에 없는 상실과 단절의 아픔을 끄집어내고 타인과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공감 받고 스스로 치유해나가는 과정, 그것이 어쩌면 노인 자서전 쓰기의 가장 큰 이유요, 목적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을 통해 ‘이만하면 잘 살았지’라는 위안과 남은 생을 아름답게 살아갈 힘을 얻으시리라 기대한다. 모두의 삶이 그렇듯, 노인들의 삶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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