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살던 아파트가 좋았던 점이 있다. 6년 동안 살면서 겪었던 수많은 단점들을 모두 상쇄시켰던 딱 한 가지 좋은 점, 터미널에서 가깝다. 시외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만 했던 내게 그보다 더 좋은 이유는 없었다.

또 다른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 그건 이사를 하고나서야 깨달았다. 일주일에 한 번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 이사 후 처음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던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쓰레기가 쌓여있는 주변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쓰레기 무덤. 무심히 던져버리고 돌아서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이렇게 막 내던지고 가면 어떡하냐고. 밟아서 정리하고 가시라고,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냐고…. 차마 그런 오지랖은 떨지 않았지만 처음 마주하는 그 광경들에 익숙해지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언제나 각이 딱딱 잡힌 모습으로 쓰레기들을 정리하던 경비아저씨들의 노고가 새삼 감사했다. 그때는 그저 그분들의 일이려니, 이렇게까지 정리하시니 나도 함부로 던지고 갈 수가 없어 한참을 머물며 내간 쓰레기를 정리해야했다. 귀찮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쓰레기라 할지언정 정돈된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으니 다른 주민들도 함부로 던지고 가지는 않았다. 아이들과 나와서 이렇게 저렇게 알려주며 같이 정리하는 모습이 훈훈할 정도였다.

어느 방송에서 외국인 출연자가 테이크아웃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도 컵을 계속 들고 다니는 모습이 나왔다. 친구들이 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느냐고 물으니 쓰레기통을 찾을 수 없다며 이야기 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종량제 시행 이후 길거리 쓰레기통을 절반 이상 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쓰레기를 버릴 곳이 없어 들고 다닌 기억, 아마 다들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들고 다니던 쓰레기를 결국 어디에 버리는가? 다른 쓰레기들이 모여 있는 곳에 슬며시 올려놓거나 휙 던져버리고 서둘러 외면하곤 한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지배하는 인간의 심리다. 이 이론은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실험(1969년)에서 비롯됐다. 자동차의 보닛만 살짝 열어 방치했을 때는 아무 일도 없던 차가 창문을 깨어 놓자 부품이 도난당하고 파손됐다. 유리창이 깨진 채 방채된 것을 본 사람들은 그 차량 또는 건물에 대해 관리를 포기한 것으로 판단하고 나머지 유리창까지 모조리 깨뜨리게 되며 강력범죄가 일어날 확률까지 높아진다는 이론이다.

방사능 오염 매트리스가 기습적으로 당진에 반입됐다는 보도를 우연히 접하고 처음엔 너무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이야기하던 그 문제의 매트리스가 당진에 들어왔다니, 그것도 뒤통수치듯 몰래! 집에서 사용할 때는 큰 문젠데 야적장에 만 몇 천개를 쌓아놓는 건 덜 위험하다는 둥 해체작업 할 수 있게 며칠만 시간을 달라는 둥 이어지는 보도내용을 보면 목에 가시가 걸린 것 마냥 불편하다. 그것이 위험하든 아니든 왜 집결지가 당진이어야 하는지 최소한 사전 설명은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자체장도 몰랐다는 이번 사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수도권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전국 최대 규모_526개 송전탑이 설치되어 있는 처참한 당진. 심각한 미세먼지 때문에 마음껏 창문을 열어놓고 살 수도 없는 당진. 어쩌면 그들은 당진을 아무거나 막 버려도 되는 깨진 유리창 쯤으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생긴다. 당진에도 알권리를 보장받고 안전한 삶을 살 권리가 있는 ‘사람’이 산다.   

저작권자 © 당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