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맘에 들어? 다음에 함께 밥 먹을 때 엄마들 하나 씩 나눠주려고 시간 될 때마다 하나씩 뜨고 있어.”

아파트에서 일명 왕언니로 불리우는 교장선생님 사모님께서 함께 운동하고 나오는 길 주머니에서 곱게 뜬 수세미 하나 슬그머니 꺼내 손에 쥐어줍니다.

왕언니의 정이 담긴데다가 알록달록 예쁘기까지 하니까 앞으로 설거지가 더 즐거워질 것 같습니다.

“이번 주 목요일 시간 되면 떡볶이 만들어서 엄마들 함께 먹을까? 곧 명절이니까 목요일 아침 일찍 떡가래를 뽑을거거든. 촉촉할 때 함께 만들어서 맛있게 먹자.”

“그류 그류. 엄마들 좋아하겠네요. 그날은 꼭 시간을 비워둘께요. 저희집으로들 오셔유.”

그렇게 이 한분 덕분에 이번 주에도 우리 아파트에서는 모두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정겨운 파티가 열리겠습니다.

“어제 끓인 팥죽이야. 먹고 싶어서 끓였는데 많아서 나눠먹으려고 조금 담아왔네. 자기가 당진 사니까 팥죽 한 그릇 먹으러 오라고 할 수도 없고, 가까이에 살면 뜨끈뜨끈할 때 바로 먹었으면 더 맛있었을텐데 아쉽다. 집에 갖고 가서 데워 먹어. 그리고 지난 번에 교회도 못가고 나 먹는 것 마다 다 토하고 죽을 뻔 했는데 세상에 자기가 사다 준 빵을 먹고서는 토하지도 않고 기적처럼 속이 가라앉는거야. 덕분에 내가 이렇게 살아났잖아. 고마워.”

서산 사는 지인분이 지난 주 아프시다니까 겨우 빵 두어 개 챙겨다 드린 것에 비하면 황송하리만큼 참 많이 고마워하면서 정성스럽게 끓여 담은 팥죽을 건넵니다. 감사한 마음에 커피 한 사발 대접하겠노라 하고는 부부지간에 커피타임을 갖는데 그분의 부군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 마누라는 전복이든 굴이든 싼 것이든 비싼 것이든 따지지 않고 내가 집에 갖다 주면 딱 먹을 만큼만 덜어놓고 다 나눠줘. 나 같으면 냉동실에 저장해놨다가 먹을 것 같은데 뒀다 먹으면 맛없다고, 맛있을 때 나눠먹어야 한다면서 윗집 아랫집 옆집 온 사방에 다 나눠줘. 그래서 내가 그런 부분에서 우리 마누라를 참 존경해.”

“나누면 서로 기분이 좋잖아요. 접때는 위에 사는 애기 엄마가 애들 생일이라고 케익 한 조각을 갖고 내려왔는데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많고 적음을 떠나서 작은 것이라도 나누려는 그 마음이 서로 정인 것 같아요. 우리 사는 빌라가 부유한 사람들 사는 곳이 아니어도 늘 웃음꽃이 피어나는 비결인 것 같아요.”

부부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까 이분들이 가진 것이 그리 넉넉지는 않아도 늘 여유가 있고 평안과 미소가 떠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팥죽을 먹는데 추억이 되살아납니다.

어릴 적 농사일에 늘 바쁜 어머니는 비라도 내려 모처럼 집에서 쉬는 날이면 밀가루 반죽 얇게 밀고 숭숭 썰어 가마솥 한가득 팥죽을 끓여서는 양푼에 담고, 우리 형제들에게 집집마다 갖다드려라 명령합니다. 밑으로 어린 언니와 나는 한사람은 팥죽이 든 양푼을 들고 한사람은 우산을 받쳐 주면서 그렇게 적잖은 집을 돌고 나면 둘 다 비에 흠뻑 젖어 ‘나를 다리 밑에서 주어 왔다더니 비도 오는데 우릴 고생시키는 엄마는 친엄마가 아님에 틀림없다’면서 툴툴거리곤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말이 아니라 몸소 덕을 끼치시며 본을 보여주셨고 우리 6남매에게 우산을 써도 옷이 젖어버렸던 것처럼 우리 형제들 각자의 마음속에 젖어들었다는 사실을 그때 알 리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더불어서 내 자신까지 행복해지는 비결은,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서 서로에게 덕을 끼치는 일이었습니다.

“엄마는 왜 맨날 나한테 심부름시켜요? 진짜 우리 엄마 맞아요?”

윗집에, 옆집에, 아랫집에 반찬 만들어 많으니까 나눠먹게 갖다주랬더니 늦둥이 녀석이 툴툴거립니다. 어린 시절 비 오는 날 팥죽을 나르면서 불평하던 나를 꼭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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