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아픔 달래는 '처방전' 같은 삶으로
이웃 아픔 달래는 '처방전' 같은 삶으로
  • 당진신문
  • 승인 2018.01.02 11:24
  • 호수 1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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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숙 시인의 '처방전을 주세요' 시집을 만나다

저기 겸손한 할머니 세 분
좁은 농로를 걸어 오신다
생을 살게 한 흙에
허리를 반 쯤 꺾어 계속 절하며 오신다

가끔씩 멈춰 서서
볼이 움푹 파인 웃음을 보내며
짐 보따리 나눠지고 오신다

시고 버스는 설경 속을 무심히 지나치는데
머리에 흰 눈 한 무더기 꽃처럼 이고
등 뒤로 손을 맞잡은 채
세월을 향해서도
꾸벅꾸벅 절하며 오신다

그 화려한 이력 뒤로 하고 논두렁 사이로 난 작은 길을 걸어들어가야 하는 태안 시골 마을의 가난한 목회자의 아내이자 시인인 오인숙(한국문인협회)님의 ‘할머니 세 분‘이라는 시입니다. 눈을 감지 않아도 눈 내린 황량한 겨울, 버스에서 내려 논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 걷는, 굽은 허리에도 세월의 짐을 지고 걷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상상이 되어지는 참 정겨운 시입니다.

2017년 한해 참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는데 막달 참 좋은 시집 한권을 만나 참 고맙습니다.‘처방전을 주세요’ 라는 제목에 이끌려 펼쳐 본 시집 첫 머리에 시인의 말이 참 인상적입니다.

‘시의 집을 또 한 채 지었다. 다른 곳으로 나들이 나갔던 시들도 불러와서 기둥을 세우고 몇 년 씩 말리고 다듬은 나무들의 결을 골라 소박한 통나무 집 한 채 지었다. 쉴 곳이 필요한 사람들이 와서 눈과 비를 가리고 잠시나마 그늘이 필요한 사람들이 머물러 갈 수 있는 따뜻하고 아늑한 치유의 공간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100페이지가 넘는 시집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오인숙 시인의 바램대로 때로는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쉼을 누리게 하는가 하면, 때로는 치유를, 때로는 살가움과 정겨움에 겨워 몸서리 치고, 때로는 감동의 도가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그야말로 참 행복한 시간들로 채워졌습니다.

어느 시는 한 번 두 번 세 번을 읽고 또 읽어도 좋아서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할 만큼 주옥같은 표현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소가 되새김질 하듯 되뇌이고 또 되뇌이며 덕분에 차분하게 한 해를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는 어렵다‘는 편견 대신, 감꽃, 호박, 피아노, 치약, 언 수도 녹이기 등 자연과 삶 속에서 시의 소재를 찾아 참 편안하게 써내려가 누구라도 시의 오묘하고도 야릇한 세상을 만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고 길을 잘 내어 놓았습니다.

‘며칠 추위가 계속 되더니
수도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
‘언 수도 녹입니다’에 전화를 했더니
장비와 함께 사람들이 도착했다
이곳저곳 얼었을만한 곳을 찾아
뜨거운 열을 가했더니
수도꼭지가 세차게 재채기를 하고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추위는 사람만 타는 게 아니었다
꽃과 나무 물길도 추워서
겨울밤에는 몸을 움츠리고 떤다
방심하면 안돼요
두툼한 외투를 입은 아저씨가 말했다
내가 방심했던 것은
저 물길만이 아니었다고 알려주는 듯 했다.
내 마음도 추위에 떨 때는
무언가 따뜻한 것을 감싸주어야 했다
아니면 졸졸 물이 흘러가게 하 듯
감정의 물길도 막지 말아야 했다
언 수도는
두 달 치의 양식을 먹고 해동 되었지만
내 마음이 얼면
얼마나 많은 양식을 먹어야 할지 모른다
방심하지 말아야지
굳는 것이나 어는 것 물길이 통하지 않는 것
불통은 불편하고 괴롭다

‘언 수도 녹이기’라는 제목의 시 가운데 ‘졸졸 물이 흘러가게 하 듯 감정의 물길도 막지 말아야 했다‘는 구절을 되뇌이며 올해도 그랬지만 다가오는 새해에도 얼었던 수도 해동 돼 콸콸 흐르는 물길처럼, 우리네 감정의 물길도 훅 열어제껴놓고 이웃과 소통하면서 필요하다면 기꺼이 때로는 내가 이웃의 아픔을 치유해 주는 ’처방전‘이 되어주기도 하면서 행복한 날들로 채워가기를 소망합니다. 새해에도 독자 여러분 가정마다 사업장마다 행운과 평안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