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도통 오질 않는지 엄마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아홉살 늦둥이 녀석의 수준높은 감사기도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정말 행복해요. 감사합니다.”

“화장을 안해도 예쁜 우리 엄마, 내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사 같은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집에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가 없는 친구도 있는데 저는 엄마 품에 안겨서 잘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하루 한끼도 못먹는 친구도 보았는데 저는 맛있는 음식을 매일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로봇과학 방과후수업을 받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봇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기가 걸렸는데 열도 안나서 약을 안 먹어도 되니까 감사합니다.”

“어제 안태건이 학교 뒤에 빙판길에 미끄러져 머리를 쿵 쪄서 조퇴했는데 오늘 학교에 나올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빙판길은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 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첨단 시설을 갖춘 우리집, 감사합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감사기도 소리, 모르는척 그냥 조용히 듣고 있었는데 한 대목에서 궁금하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기도를 하고 있는 중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우리집이 최첨단 시설을 갖췄다고? 예를 들면 뭐?”

“예를 들면, 침대, 쇼파, 가스렌지, 오븐, 세면대, 변기.....”

“헐”

 너무나 당연히 어느 집이나 다 있는 침대, 쇼파, 가스렌지, 세면대, 변기가 최첨단 시설이어서 감사하다니.

감기에 걸려서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코를 풀어대야 하고 목에 가래가 꼈다며 켁켁거리면서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던 비결은, 열이 안 나니까 약을 먹지 않아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긍정의 ‘감사약’ 덕분이었습니다. 콧물이 줄줄 나오고 가래가 자꾸만 목에 껴 ‘불편하다’ ‘아프다’ 불평할 수 도 있는데, 열 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이 녀석에게서 행복의 비결을 배웁니다.

잘 차려진 밥상을 대하면서도 누구나 먹을 수 있는 밥 아니고 어떤 아이에게는 하루종일 굶었다가 종일 노동의 댓가로 대하는 눈물어린 한끼 일 수 있음을 기억하는 것. 어차피 내돈 내고 하는 방과후 수업이지만 기회를 얻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따뜻한 내 집, 포근한 이불 속이 노숙자에게는 인생 역대 가장 큰 소망인 것을 기억하는 마음. 화장을 안 해도 예쁠 리 만무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엄마로, 원하는 장난감과 책을 사주는 아빠를 마법사로 기억하는 것.

여느 사람들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사소한 것들을 감사의 대상으로 바꾼 이 녀석이 늘 싱글벙글 행복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빨리빨리 먹어. 입 안에 밥을 넣어놓고 그냥 앉아있으면 워칙혀? 텔레비전을 끄든지 해야지. 텔레비전 말고 밥 먹는 일에 집중하라고. 너 때문에 내려왔던 혈압이 도루 오른다. 5분 남았다, 3분 남았다. 헐, 가야돼.”

'혈압이 왜 내 탓이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지만, 성질 급한 엄마가 씩씩거리며 아침마다 대놓고 협박을 해대도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여 보내려는 엄마 마음인 것을 눈치 챈 녀석은 결코 상처받지 않습니다. 늦어죽겠는데 신발을 신으면서 여유롭게 던지는 녀석의 말에 넉다운 되고맙니다.

“엄마는 아침마다 귀여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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