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부대에 상근예비역으로 출퇴근 하고 있는 아들눔이 야간 보초를 서고 퇴근해 돌아올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 현관문 여는 소리 대신 사진 한 장이 문자로 왔습니다. 녀석, 밤새 근무 서느라 배고프고 졸릴텐데 부모님 결혼기념일이라고 시내까지 걸어 나가 케익을 준비한 모양입니다. 유난히도 커다란 케익을 들고 온 녀석의 손이 차갑고 벌겋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고마워라. 내가 우리 아들을 안 낳았으면 어쩔 뻔 했냐.”

“엄마, 아들이 상근이라 이렇게 챙겨드릴 수 있었지 현역으로 갔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에고 그러네! 생각 못했는데 그것도 다 이 엄마 복이다!”

“밤새 아무것도 못 먹고 배 많이 고팠을텐데 기왕 간 것 빵이라도 하나 사 먹고 오지 그랬냐” 물으니, 군 생활 좀 해보더니 이 땅에서 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빵보다 엄마께서 해 주신 밥이 더 맛있으니까요.”

엄마가 해주는 밥이라 봐야 그냥 있는 반찬 모조리 썰어 넣고 볶거나 비빈 것이 전부인데 똑같은 밥을 아침에 주고 저녁에 줘도 ‘우리 엄마가 만든 밥이 최고‘라면서 먹을 때 마다 기꺼이 ’엄지 척‘ 감동하면서 먹어주는 그런 아들이 어떤 남자랑 21년 살았더니 생겼습니다.

어떤 남자랑 21년 살다보니 이런 아들도 생겼습니다.

숫자에 약하고 날짜 개념이 아직도 희박한 둘째 눔은 11월이 접어드니까 매일 아침 눈만 뜨면 묻습니다.

“엄마, 결혼기념일이 언제라고 했죠?”

“엄마, 결혼기념일이 오늘이에요? 아니에요?”

스님이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 있다더니 꼭 이 녀석을 두고 한 말입니다. 8~9년 겪어보니 ‘결혼기념일에는 어김없이 외식을 하고 케익을 먹더라’ 하는 것이 이 녀석의 잿밥입니다.

그렇게 17일 동안 이어 온 둘째 녀석의 질문이 드디어 막을 내리고 기념일이 되었더랍니다.

“형님은 커다란 케익을 준비했는데 넌 무슨 선물을 주려고 그렇게 매일 같이 물어봤던거야?” 모처럼 식구끼리 외식을 하러 가는 차 안에서 물으니 답을 합니다.

“선물 이따 집에 가서 드릴께요. 아니 지금 드릴까요?”

“웅, 지금 주라.”

“제가 선물이에요. 저를 받아주세요.”

“에효! 꼼수 재랑을 기대한 우리가 잘못이지!” 턱을 두 손으로 괴고 여자 여럿 홀릴 만한 요망한 미소를 지어가면서 받으라는데 안 받을 수도 없는 노릇. 그렇게 26키로가 넘는 녀석을 선물로 받아 품에 안고 호탕한 웃음을 웃습니다.

덮어놓고 착한 아들 하나, 수시 때때로 꼼수를 부리지만 애교만점 아들 하나! 한 남자랑 21년 살았더니 성격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고, 생김새도 완전히 다른 띠동갑 두 아들이 생겼습니다. 시작은 둘이었는데 넷이 되었으니 이유를 불문하고 결혼은 남는 장사입니다.

또 다른 20년을 향해 내디딘 첫발. 신이 우리 부부에게 주신 선물, 아이들과 어떤 나날들이 펼쳐질까 상상도 해보고 기대도 됩니다. 늦둥이 녀석 덕분에 수험생엄마노릇 한 번 더 해야 겠네요. 때 되면 혼주가 되는 날도 올 거고,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손주를 품에 안고 함박웃음 웃을 할머니 할아버지도 되겠지요. 이 모든 것이 결혼해 자식을 선물 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러니 결혼하기를 잘한 것 맞습니다.

또 다른 20년을 참 잘 살아낼 수 있기를 기도하며 케익에 꽂힌 촛불을 끕니다.

넷이서 함께요.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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