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좀 한다는 수험생 딸을 두고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고 앉아 있자니 미안해 1년 내내 지하 헬스장에서 내려와 슬슬 걸으면서 드라마를 보는 이름하여 ‘수험생엄마’가 있습니다. 배꼽을 잡을 만큼 재밌는 내용을 보고서도 집에서는 키득키득 소리 내어 웃을 수도 없으니까 헬스장에서 보는 드라마가 이래저래 맘이 편합니다.

처음에는 동네 주민들, 운동은 뒷전이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까르르 까르르 웃어대는 이 엄마를 보고 의아해 했다가 속사정을 알고 나서는 모두 그러려니 하고 이해합니다. 이렇게라도 웃어야 긴장감이 풀린다고 하니 동네 사람들, 더 크게 웃으라고 배려해줍니다.

수능을 4일 앞둔 일요일 오후에 여전히 런닝머신을 위를 걸으며 드라마 시청중인 이 엄마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야말로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와서 그런지 재밌는 드라마를 보면서도 건성입니다. 웃음기 없는 얼굴에 긴장이 역력합니다.

“딸이 곧 수능이라 뭘 해도 건성이지요?”

“그러네요. 시험 내가 보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떨리는지. 소화도 안되는 것 같고, 수험생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서 볼 때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모임에서 얘기 들어보니까 100일을 작정하고 새벽기도 하는 엄마들 여럿 있더라구요. 믿음이 있고 없고는 두 번째 문제고 자식한테 에미로서 그 정도 성의는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나도 새벽기도를 가야겠다 마음은 먹었는데 내 생전에 새벽에 교회를 가본 적이 없어서 그마저도 쉽지 않더라구요.”

그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던 중간에도 어김없이 ‘딸래미 태우러 가야한다‘ ’학원에 태워다 줘야한다‘면서 냉큼 자리를 뜨곤 했던 이 엄마는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 해줘놓고도 죄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딸은 알까요!

1989년 이맘때쯤. 형편이 나아져서 좋은 대학 합격통지서를 고이 접어놓고 공장을 가야 했던 3년 터울 진 언니와 동시에 연합고사를 치르게 됐는데 그때 내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었을까 한 번도 헤아려보지 않았습니다. 연합고사를 치르기 위해 하루 전날 두 딸이 도시로 나가는데  ‘떨지 말고 잘 치르고 오너라’라든지 ‘넌 잘할 수 있을거다’라든지 그 어떤 말씀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호들갑 떨면서 이런 말 저런 말을 건넬 수조차 없을 만큼 어머니께서 긴장하고 계셨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훗날 두 딸 모두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에 합격 소식을 알렸을 때 그 추운 날 마을 우물가에 빨래하시던 우리 어머니, 빨래방망이 저 멀리 내던지고는 얼싸안고 기뻐했습니다. 합격소식을 접하기 까지 우리 어머니 방망이질을 해도 건성이었고, 밭에 앉아 김을 매도 건성이었고, 밥을 해도 건성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무던해서, 농사일에 바빠서 아무런 관심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어머니 감사해요, 마음고생 하셨지요, 정말 고맙습니다’ 한마디 인사할 줄도 몰랐습니다.

집에서는 좋아하는 드라마를 맘 놓고 볼 수도 없고, 1년 내내 함께 수험생이 되어 때로는 운전기사로, 수시 때때로 먹을 것 입을 것 챙겨줘 가며 뒷바라지 하면서도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살아온 우리 수험생엄마들,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우리 고3수험생 여러분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만, 결과를 떠나서 뒤에서 이렇게 저렇게 배려해주면서 수고해 주신 부모님께 꼭 마음을 표하시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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