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언론인 워크숍이 전남 강진에서 열려 동료들과 함께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워크숍을 핑계로 오며 가며 알록달록 물들어 가고 있을 아름다운 가을풍경을 볼 생각에 전날 밤 잠도 설쳤는데 사람 마음은 다 거기서 거긴가 봅니다. 함께한 일행 모조리 같은 마음으로 잠을 설쳤다고 고백해 소리내 웃습니다.

“우와~!!! 저 억새 좀 봐요. 너무 이쁘다!!!”

“우리 서산이 단풍이 좀 늦게 들지요? 그래도 저 산 좀 봐요. 세상에나 파스텔 물감으로 색칠해 놓은 것 같네! 이쁘다!!!”

“오늘 비 온다고 했는데 맑게 갰어요. 저 하늘 좀 봐요. 하얀 구름도 예쁘고 진짜 높기는 높네요. 그런데 가을 하늘은 대체 왜 높은 걸까요?”

달리는 차창 밖으로 출발지인 서산을 다 벗어나기도 전에 감동의 신음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데 가을하늘은 왜 높을까 진짜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당장 검색해보니 시베리아 벌판의 공기가 우리나라로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높고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데 장마와태풍, 한여름의 비가 공기 중의 먼지를 다 씻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지식백과에 실려 있습니다.

“아하! 그렇구나!”

정확한 지식 하나 얻어 가슴에 품고 자동으로 차창 밖 머리 돌려 들판을 바라봅니다.

“아이고, 저 논은 아직 추수를 못했네!”

추수를 다 마친 들판은 동글동글 포장된 볏단이 온통 자리 잡고 앉았는데 추수 안 한 작은 논은 마치 길 잃고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같아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농부님, 무슨 사정이 있겠지요.^^

오고 가는 길목에 잠깐 잠깐씩 내려 숲속 억새도 만나고, 물가에 갈대도 만나고, 손닿지 않아 남겨 놓은 붉은 홍시를 향해 안 되는 줄 알면서 손도 뻗어 봤다가, 노오란 은행잎 한뭉탱이 늦둥이 녀석 후드티 모자에 담아 장나도 치고, 시시각각으로 자꾸만 붉어지는 단풍 아래 인증샷도 남기며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가을을 입습니다.

노랗게 노랗게 물들었네 빨갛게 빨갛게 물들었네
파랗게 파랗게 높은 하늘 가을 길은 고운 길♬
트랄 랄랄라 트랄 랄랄라 트랄 랄랄랄라 노래 부르며
산 넘어 물 건너 가는 길 가을 길은 비단 길♬
트랄 랄랄라 트랄 랄랄라 트랄 랄랄랄라 소리 맞추어

숲속의 새들이 반겨 주는 가을 길은 우리 길♬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웠던 ‘가을길’을 어릴 적 친구 손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듣는 사람도 없으니까 목청껏 불러댔었는데 지금은 늦둥이녀석 손을 잡고 함께 부르며 걷습니다. 가을길은 노랫말처럼 참 곱고도 아름다운 비단길입니다.

“우와, 청솔모다!”

아직 겨울 채비 다 못했는지 청솔모 한 마리 도토리 찾아 나왔습니다. 시인 박목월의 <다람 다람 다람쥐> 시가 생각납니다.

[다람 다람 다람쥐 알밤 줍는 다람쥐
보름 보름 달밤에 알밤 줍는 다람쥐
알밤인가 하고 조약돌도 줍고
알밤인가 하고 솔방울도 줍고]

대낮이니까 저 청솔모, 조약돌인지 솔방울인지 도토린지 알밤인지 잘 구분해 헛수고 하지 않기를 바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저 잠깐 잠깐 걸었을 뿐인데 몸도 마음도 일제히 가을로 흠뻑 물들었습니다. 곱게 고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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