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표 세시 명절중 하나인 정월대보름, 추억을 되살리며 늦둥이녀석과 찌그러진 깡통 대신에 플라스틱 통에 은박지를 입히고, 구멍 숭숭 뚫어 끊을 메달고, 숯불 대신 건전지로 켜지는 불빛 담아 아파트 놀이터에서 쥐불놀이를 흉내내봅니다. 마냥 좋아 신나게 돌려대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새록새록 추억이 되살아납니다.

둥글둥글 새하얀 보름달, 어린아이의 눈에는 얼마나 큰지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 만 같아 손을 쭉 뻗고서는 ‘언니 키 크니까 저 달 장대 들고 따달라’고 졸라대던 정월대보름.

어머니 부엌에서 오곡밥을 짓고, 꾕가리, 징, 북, 장고소리 웅장하고도 요란하게 마을을 빙빙 돌아 메아리칩니다. 집 바로 옆 마을회관 앞에서는 멍석 깔아 놓고 막걸리 내기 윷놀이가 무르익어가고, ‘윷이요!’ ‘모요!’ 대 합창 소리에 절로 흥이 납니다.

짚단 하나 무게중심을 잡아주고, 위에 널빤지 덩그라니 올려놓고는 앞마당에서 언니와 널뛰던 일. 육중한 언니의 몸이 널 위에 닿는 순간 창공 위로 높이 높이 날아오르고, 담장너머로 논바닥에서는 동네 녀석들 둥그런 원을 여기 저기서 그려대며 쥐불놀이에 한창입니다. 널 뛰다 말고 아버지 졸라 깡통에 구멍 숭숭 뚫고, 양쪽에 구멍 뚫어 끈을 메달고, 잘 달구어진 숯 몇 개 담아 친구들에게 달려갑니다. 소망을 기원할 여지도 없이 설빔으로 마련해 준 빨간 니트 그을릴까 노심초사 소심하게 돌리다가 불똥이 튀어 눌어버린 니트 붙들고 속상해 세상 다 끝난 것처럼 앙앙 울었었는데....

짓궂은 동네총각들, 싸리비 훔쳐 불놀이 한다니 아버지 부랴부랴 챙겨 곳간에 숨기고, 예나 지금이나 믿음도 좋아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는 말이 굳게 믿어져 자꾸만 감겨오는 눈 치켜뜨고 버티고 버티다 무너져 잠이 들었는데, 체력 만땅 언니는 친구들과 밤새 이집 저집 들러 집집마다 색도 종류도 다른 오곡밥을 얻어다 놓았습니다. 어머니 차려놓았던 오곡밥도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침이면 밥그릇이 여럿 비었습니다.

대보름 아침, 청주(귀밝이술) 한잔 들이키시던 아버지에게 일년 내내 즐거운 소식만 들렸겠습니다. 어린 시절 정월대보름은 이런 저런 추억도 많아 그야말로 추억의 꿀단지입니다.

올해는 구제역이다 AI다 대보름 행사가 일제히 취소된 가운데, 11일 대보름 신문사 가족들이 윷놀이 장을 마련했습니다. 승패에 관계없이 ‘윷이요’ ‘모요’ 함성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유쾌하고 통쾌합니다. 구경만 해도 즐거워지는 윷놀이는 여러 사람 하나로 만드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함께 오곡밥을 나누고 정성스레 마련된 갖가지 나물을 대하며 서로의 건강을 빌어줍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참여한 윷놀이, 재활용품을 이용해 만들어 돌려댔던 쥐불놀이가 지금 내가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정월대보름처럼 아이에게도 한편의 추억이 되겠지요. 이토록 아름다운 우리 민족의 세시풍속이 아들, 손자, 대대손손 이어져 잊혀지지 않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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