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도전하지 않으면 추억도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엄마로, 혹은 아내로, 아빠로, 아들 딸로, 할머니로, 삼촌으로 불리울 지극히 평범한 분들이 그저 노래가 좋아서 흥얼거리는데 그치지 않고 좀 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열정 하나로 한서대학교 평생교육원(성악과정, 지도교수 조용란/차정식)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분들 시간 많고 한가해서가 아니라 치열한 삶의 현장을 누비면서도 짬짬이 시간을 내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가며 배움의 길을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 그들이 드디어 무대에 올랐습니다.

관객석에 앉아 이분들의 무대를 기다리면서 ‘어젯밤 잠은 또 얼마나 설쳤을까! 대기하면서, 또 무대에 입장하며 걷는 그 짧은 순간까지도 긴장의 연속이겠지. 노래하는 중에도 마지막까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될 것 같아. 너무 긴장돼서 아침도 점심도 거른 분도 계실껄. 오늘 훨씬 이전부터 어쩌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무대에서 어떤 드레스를 입을까 고민하고 고민하면서도 어린아이처럼 참 많이 설레였을거야. 긴장되는 무대가 아닌 맘 편하게 관중석에 앉아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울거야. 나는 저분들이 부러운데‘ 하고 생각하는데 공연히 내 가슴까지 콩닥거립니다.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이 참 고운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라 인상적입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선다는 것은 나이를 불문하고 공통분모가 하나 있으니 떨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래도 연륜이 묻어나듯 차분하게 노래를 불러 관중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이분의 무대는 배움의 열정 앞에서는 나이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고향 그리워
은 하늘 쳐다보며 눈물집니다
시냇물은 소리높여 좔좔 흐르고
처량하게 기러기는 울며 나는데
깊어가는 가을밤에 고향 그리워
맑은 하늘 쳐다보며 눈물집니다

또 한분 눈에 띄는 분이 있습니다. 고운 한복을 입고 입장합니다. 새타령을 부르니 우리 옷이 어울립니다. 누군가의 아내이고 엄마인 이분, 오늘만큼은 정말 모두에게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습니다. 그런데 왜 이리 떨리는지 평상시 연습한 만큼 소리가 나와주질 않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그만 간주 중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나오고 맙니다. 이런 모습조차도 관객들은 귀여워 함께 웃습니다. 프로가 아니고 아마추어니까 오히려 자연스럽고 좋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속상해 죽습니다.

“엉엉엉엉~ 어떻게 해. 너무 못했어. 속상해 죽겠어.”

일정상 먼저 나왔는데 이분 대기실 앞에 나와서 남편분과 통화하면서 웁니다. 관중석에 있던 남편이 아내의 전화를 받고 나와 한 손에 꽃다발을 들고 또 다른 한손은 전화기를 들고 통화하면서 아내를 향해 다가갑니다.

“아내 분 정말 귀엽게 너무 잘하셨다고 전해주세요.” 남편 분에게 한마디 건네고 돌아나오는데 “왜 울어, 자기 귀엽게 잘했어.”하고 위로하는 남편 품에 안겨 앙앙 울어댑니다. 영락없이 18세 소녀입니다. 이분들에게 이날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되겠지요.^^

능수능란하게 부르는 분의 무대는 즐길 수 있어서 좋고, ‘고음이 잘 나와줄까’ 염려 한가득 안고 부르는 분의 무대는 그 마음 십분 이해가 가니 인간적이어서 좋습니다.

잠도 설치고 밥도 못 먹을 만큼 긴장되는 무대에 생사가 걸린 것도 아니니 꼭 오르지 않아도 되지만 도전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추억도 없습니다.

긴장의 연속이었던 무대가 그렇게 막을 내리고, 이분들 그날 밤 모처럼 만에 발 쭈욱 뻗고 편히 잠들었겠지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에, 혹은 내가 해냈다는 대견함에 웃음 지으며... 혹여 아쉬움이 남더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도전할 용기를 심어준 것 만으로도 당신들은 이미 훌륭합니다.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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