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이 지나니 김장철이 됐습니다. 주말에 시댁에 김장하러 다녀오겠다던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워치게 잘 댕겨오셨슈?”

“흐미, 허리에 알 배겼슈~”

어머니, 시누이, 고모부 등등 식구들이 다 모여 함께 김장을 담갔다는데 목소리가 지쳐있습니다.

“몇 포기나 했깐유?”

“50포기 할라고 했쥬. 인심 좋은 배추 할머니가 열 포기나 더 얹어주시는 바람에 60포기 했슈. 할머니가 팔봉 산 밑에서 키운 배추를 배 타고 나가 가운데서 퍼 온 바닷물에다가 절여서 파시는디 주문한 배추 받기로 헌 날 직접 가서 건지는 것 도와드렸슈. 그랬더니 더 주시더라구유. 아이러니 허유. 할머니는 딴에 생각 허고 더 주시는디 말은 감사하다고 혔지만 일이 더 늘어난 기분이 드는 건 뭐쥬? 흐흐”

“흐미, 많이 힘들었겄슈~~!”

“그래도 올해는 절인 배추 사다 해서 힘 하나도 안 든거유. 작년까지만 해도 배추 사다가 전날 직접 절이고 밤 새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고 허다가 새벽에 씻어서 건져놓고 허다 보믄 벌써 지친다니께요.”

“김장을 제가 한 번도 직접 못해 봤슈. 워치게 허는거래유?”

“흐미, 김장이 대사중에 대사유. 밤새 잠 설쳐가면서 그렇게 배추 준비해 놓고, 날 밝으믄 밥도 대충 한 두 숟가락 뜨고는 풀 쑤고, 새우젓 까나리 액젓 삭힌 거 끓여서 식혀놓고, 파 다듬어 씻고 썰고, 당근 썰고, 마을 빻아 준비하고, 무도 채칼로 썰믄 물 생겨서 맛 없으니께 직접 채 썰어야유. 내 다리통 만 헌 것 한 30개 썬다고 생각해봐유. 장난 아뉴.”

“흐미, 글구만유~!!!”

“김장이 제일 힘든 게 뭔지 알어유? 배추 절이는 것 다음으로 속 버무리는 거유. 생각해봐유. 60포기를 반으로 자르믄 120개니께 요것을 버무릴 속을 준비헐라믄 얼마나 많은 양을 준비해야겄슈? 흐미 우리 시어메가 아들 애끼느라고 얼씬도 못 허게 해서 매년 제가 했잖유. 올해는 시누이가 다그쳐서 남편이 속 버무려 줘 한결 나았구만요. 역시 힘 쓰는 것은 남자가 허야유. 속 넣는 것도 함께 도와주니께 일찌감치 끝났다니께유. 거 글 쓰거든 한마디 써 줘유. 김장헐 때 옆에서 속없이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다가 다 해 놓으믄 와서 보쌈만 낼름 낼름 싸 묵지 말고 함께 도와주라구유~ 여자들 골병 들믄 여자가 좋겄슈? 남자가 좋겄슈? 서로 애끼야쥬. 안 그류?”

“그라쥬~”

“힘은 들어도 식구들 모처럼 함께 모여서 돼지고기 팔팔 삶아 숭덩 숭덩 썰어서 잘 버무려진 속과 함께 배추에 싸서 먹을 때 기냥 싹 다 보상이 된다니께유. 흐흐흐”

“흐미, 시방 침 넘어가유~~!!”

“마감 허시거든 김장 갖고 갈테니께 수육 삶아 놓고 접선허유.”

“그류 그류” 하고 기분 좋게 수화기를 내려놓는데 어릴적 어머니께서 시골집 앞마당에서 파랗고 커다란 포장을 깔아놓고 금순이 엄마, 인철이 엄마, 혜옥이 엄마, 종숙이 엄마, 밤제댁, 금산댁 참 많이도 모여 앉아 배추에 속을 넣어가면서, 하하 호호 웃음꽃 피우며 품앗이 김장을 하던 일이 생각납니다. 같은 배추, 같은 양념인데 이상하게 집집마다 다른 김치 맛. 그러니 서로 맛보라고 한 종지씩 바꿔 먹던 일. 지인이 말 한대로 먹을 것 풍성한 요즘에도 모든 피로가 한방에 싹 다 보상된다던 그 수육보쌈을 싸먹는 다는 것. 없던 시절에는 더더욱 연중 잔치중에 잔치요, 모두에게 행복이었습니다. 그저 옆에서 잔심부름이 전부였지만 어린아이의 가슴속에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로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힘들지만 가족끼리, 이웃과, 혹은 친구와 함께 하면서 결속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이 정겨운 김장문화가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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