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종 미 / 신성학원장. 시인. MBTI심리상담사

경험이 풍부한 아이는 이해도 빠르고 순발력도 좋아 뒤에서 살살 부채질만 해도 순풍에 돛단 듯 앞으로 나가지만, 험난한 세상에서 행여 큰 탈이라도 날까 두려워 과잉보호 하면, 어려서는 단순암기로 실력 있는 듯 보여도 점점 자라면서 자율적인 판단력이 따라주질 않아 어려서 작게 배워야할 좌절과 실패를 좀 더 자라서는 큰 덩어리로 경험한다.

이런 생각으로 겨울,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학생들에게 경험을 만들어 주기로 마음먹고 겨울에는 스키캠프, 여름에는 숲속 체험을 계획하고 실천하였다.


2008년 정월 어느 날 강원도 깊은 산속에 위치한 스키장으로 출발!
자라는 청소년기에는 1박2일이 부모의 눈을 피해 스릴 넘치고 정신적으로 한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지나 보다.


한밤 중, 한숨자고 자세를 바꾸어 돌아누우려는데 컴컴한 콘도거실에서 대문열리는 소리가 딸칵하고 나더니 밖으로 나가는 발걸음 소리가 약 세 명 정도로 짐작케 들린다. 당장 나가서 붙잡을까, 아니야 저 아이들에게 떨림을 경험하게 주는 것도 괜찮아 라는 두 마음이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지금부터 약 26년 전, 고3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엄마와 터놓고 말 못할 고민도 함께 나누던 두 친구가 있었다.
절친 세 명의 외모는 뛰어나진 않지만 행동은 참 예뻤다.


삼총사는 약 3년 동안 낡고 추운 합숙소에서 베개와 이불 하나로 서로를 의지하고 다독이며 미래를 준비했었다.


어느 날 수학 시간에 가장 키가 큰 경선이가 선생님 몰래 고구마 과자를(두껍고 딱딱함)한입 베물었는데 조용하던 교실에 벼락이라도 떨어진 양 ‘딱??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칠판에 판서해가며 분수처럼 침을 쏟아내시던 수학 선생님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무슨 소리냐는 듯 황소 눈처럼 크게 떠졌다가 알 것 같다는 듯 이내 내 곁을 지나 천천히 경선이 옆으로 가시더니 먹잇감에 침 꽂듯 “너, 아----해봐!”


결코 서두르거나 화내지 않고 냉정하지만 콧소리 살짝 섞은 달짝지근한 목소리다. 겁먹은 경선이는 결국 해보라는 아-는 하지 않고 뭔가를 침 발라 꿀꺽 넘기는 소리로 우리 둘도 가지고 있다고 불었고, 그 소문은 담임선생님 귀에까지 홍수에 물 불어 가듯 흘러 옥상에서 오리걸음을 족히 20분 동안 걸었고 입시라는 코앞의 문제를 쉽게 보고 정신 흐트러진 행동을 한 죄 값이 크다고 엉덩이 퍼렇게 얻어맞았다.


생각이라는 것도 꼬리가 달렸는지 밖으로 나간 아이들 잡을 생각은 뒷전으로 미루고 생각 속으로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성미가 집에서 저녁을 먹고 야간 자율학습 하러 학교에 오던 중 미지의 남자 고등학생이 자전거 타고 지나 가다가 성미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세게 치고 도망가서 억척스럽고 지기 싫어하는 성미, 좇아가서 욕하다 죽도록 매만 더 맞고 울면서 학교에 왔다고 한다.


성미일이 내 일인 양 분함을 이기지 못한 우리에게 성미는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그 녀석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거의 매일 그 시간에 그 곳을 지나다닌다는 것이다. 삼총사는 다음날, 도로 옆에서 사건의 주인공 무명씨가 지나가기만을 고대했다. 물론 체육복 차림으로. 역시 그 무명씨는 도로 저 아래서 자전거 패달을 밟으며 자신에게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까맣게 모른 채 여유롭게 올라오고 있었다.


준비, 시-작과 함께 돌멩이를 집어던진 후 학교로 도망쳐 와 가만가만 숨 고르는데 아뿔싸, 피해자는 다름 아닌 어제 그 무명씨가 아니라 그냥 교복과 자전거 탄 모습은 같고 외모는 전혀 다른 억울한 행인이었다.

속 좁은 피해자는 여고까지 용기 있게 좇아 와 숙직선생님께 고해바치는 바람에 우리 삼총사는 숙직실 앞에서 무려 1시간 동안 노래를 끊지 않고 계속 불러야 했고, 애매한 행인에게 이유 없이 행패부린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긴 시간 동안 설교를 들어야만 하는 벌을 감내해야 했다. 사건은 또 있었다.


각자 원하는 대학에 삼총사가 모두 우스운 실력으로 합격을 한 후, 어영부영 출석 수업만 하고 있던 중, 학교 운동장에서는 후배들 예비 소집이 있었다. 그런데 심심한 삼총사의 눈에 빛을 띠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학교 담 너머에 군악대가 와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은 쭉 여고였었는데 삼총사가 졸업한 후 바로 학교 이름이 바뀌고 남녀공학이 된다는 것이다.
그걸 축하해준다고 군악대가 왔다고? 아무리 선생님께서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엄포를 놨다지만 늦게 구경 나가면 제일 앞에선 키 크고 멋진 아저씨를 다른 경쟁자들이 찍을까봐 성미, 경선, 나는 2미터가 넘는 담을 서로가 서로를 부축하고, 사다리까지 동원해 학교 밖으로 나가 먼저 보고 눈으로 점찍을 수 있는 행운을 안았다.

문제는 수업이 끝난 후, 너희 어리버리 삼총사! 종례 후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 집합. 하신다. 낮에 행했던 월담을 까맣게 잊고 있던 우리는 선생님이 왜 남으라고 하실까 라는 궁금증도 없이 운동장에서 망아지 튀듯 신나게 놀고 있는데 담임선생님께서는 반성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반성의 기미도 없다며 우리의 완벽에 가까운 비밀을 죄목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알려 주시는 것이다.


또 숙직실 앞에 불려가 노래해야겠지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이번에는 그게 아니었다. 낮에 넘었던 담장을 사다리 없이 왔다갔다 열 번 한 후 선생님 부르라는 것이다. 물론 삼총사는 실제로는 중간키보다 모두 작았다.

담장 앞까지 데려다 주신 선생님 손을 놓치면 죽는 줄 알고 울며불며 메달리던 시절이 아스라이 지나간다.
그 때를 생각하면 경험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크고 소중할 수가 없어 나는 멀어져 가는 저 발걸음을 멈추게 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조금 전에 딸칵 소리를 내며 나간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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