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샘 호천웅 수필가/前 kbs 기자. 前 신성대학교 교수

솔샘 호천웅
솔샘 호천웅

“큰아버지, 저 공부하고 싶어요! 중학교에 보내주세요” 솔샘이 초등학교 다닐 때 일입니다. 이웃집에 사는 착한 사촌 형이 우리 집 마당에서 울고, 딩굴면서 부르짖었습니다. 그 사촌 형의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의 바로 밑에 동생이고, 그분은 일제 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가셔서 소식이 없다고 했습니다.

홀로된 사촌 형의 어머니하고 형과 누나 그리고 두 여동생 등 여섯 식구가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사촌 형은 어렵사리 먼 송악중학교에 입학했고, 소원이던 공부도 조금 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뒤 사촌 형네 여섯 식구는 인천으로 이사 가서 어렵게 살았습니다. 

솔샘이 고학하며 대학 다닐 때의 일입니다. 큰 사촌 형이 인천중공업에 공원으로 취직해서 가족의 생계를 돕고 있었는데 그 큰 형마저 안전사고로 순직했습니다. 산재처리 과정을 거쳐 얼만가의 위로와 보상금을 받았으나 그마저도 큰 보탬이 되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또 세월이 흘렀습니다. 솔샘이 육군 상병이었을 때였습니다. 휴가를 맞았습니다. 인천에 살고 있던 사촌 형네 집을 찾았습니다. 형은 일 나가고 작은어머니 혼자 댁에 계셨습니다. 작은어머니는 말씀 마다 아들 칭찬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니네 형 효자야! 효자여!”

점심때가 됐습니다. 작은어머니께서는 휴가 나온 조카를 위해 쌀밥을 새로 짓고 정성껏 상을 차려주셨습니다. 밥상을 대하며 눈물이 나왔습니다. 쌀밥이 참 맛있었습니다. 고봉으로 담은 밥을 눈물을 삼키며 다 먹었습니다. 작은어머니 정성을 생각하며 억지로 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작은어머니는 조카가 남기면 드실 생각이셨는데 다 먹는 바람에 그만 굶으셨답니다. 얼마 후 그 얘기를 전해 듣고 솔샘은 한참을 울었습니다.

세월이 또 흘렀습니다. 제대하고 취직한 솔샘이 다시 작은어머니의 인천 집을 찾았습니다. 눈이 어두워져 힘드시다는 작은어머니께 돋보기 하나 사다 드렸더니 그걸 쓰시고 잘 보인다며 좋아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또 세월이 흘렀습니다. 팔십이 훨씬 넘었고 이제 구십을 바라보는 사촌 형은 팔십 넘어서도 용접일을 하셨답니다. 얼마 전에 성당에서 봉사하시다가 사다리가 넘어져 다친 뒤로는 그 일도 접었다고 하셨습니다.

선친께서는 3형제의 장남이셨습니다. 지난달에는 솔샘의 형제와 막내 삼촌의 아들들인 사촌들이 고생하시는 징용자의 아들인 인천의 사촌 형을 찾아뵙고 위로를 전했습니다. 징용의 눈물은 세월이 간다고 씻겨질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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