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동 칭다오 대학 석좌교수

한형동 칭다오 대학 석좌교수.
한형동 칭다오 대학 석좌교수.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이는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오는 명언이다. 우리가 효도를 하고 싶어도 이미 부모님이 돌아가시어 실행할 수 없는 상황의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는 말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했다. 

엊그제가 희미해져 가는 효를 생각하게 하는 어버이날이었다. 우리는 효를 논함에 있어 종종 까마귀를 예찬한다. 까마귀는 다 성장하고 나면 자신을 먹여 키운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구해 씹어 먹여준다. 이래서 까마귀를 반포조(反哺鳥 : 도리여 먹여주는 새) 또는 효조(孝鳥)라고 부른다.  

효의 규범을 수록한 경전인 효경(孝經)은 “효는 덕(德)의 근본이요, 모든 가르침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난다(孝德之本也 敎之所由生也)”라고 규정한다.

효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virtue)이다. 효라는 개념에는 예의와 보은의 나무위에 사랑과 감사가 가지치고 봉사와 배려가 숨쉰다. 이에 불경(佛經)은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미워하지 않으며,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남을 얕보지 않는다.”고 훈계하고 있다.

현대의 세계적 철인들과 석학들도 이런 덕목들을 인격도야의 필수 항목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효의 실천은 곧 모든 덕행을 구현하는 것이고, 이 덕행이야 말로  인성(personality) 교육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청춘은 퇴색하고 사랑은 시들고 우정의 나뭇잎은 떨어지기 쉽다. 그러나 부모의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영원히 식지 않는 용광로와도 같다.그런데 우리는 과연 부모의 자식사랑에 대해 얼마나 보답하고 있는가? 진솔하게 고백하건데 우리 사회에서 효의 실행도는  그야말로 바닥수준의 좌표를 나타내는 것이. 사실이다.

아예 효를 운운하는 사람은 석기시대의 진부한 사람으로 취급될 정도다. 최근에 노인들간에는 “자식한테 효도는 커녕 요양원으로 보낸다는 협박만  안 받아도 복받은 사람이다”라는 유행어가 나돌고 있다고 한다.

또 SNS에 회자되는 글을 보면, 요즘 젊은 부부들은 부모를  집에 모셔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들 여행기간 동안 애완견 돌보기 임무를 부여하고 여행가서는 부모보다 자기 강아지 안부부터 묻는다고 한다.

게다가. 애완견에게는 오리고기 등 불포화 지방의 육류를 사먹이고 매월 건강 검진을 시키지만, 부모의 혈압과 당뇨 등 건강 상태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부모가 자식들로부터 애완견 만도 취급을 못받는 세상에 살고있는 것이다. “슬프도다 부모는 나를 낳았기 때문에 평생 고생만 했다”라는 시경(詩經)의 구절이 새롭게 음미되는 대목이다. 

위의 사례들은 얌전한 부모 박대다. 어느 아들은 노모(老母)가 라면을 잘못 사왔다고 구박을 하여 노모를 울리고, 어느 패륜아들은 자식을 훈계했다고 부모에게 폭행을 하고 ,재산 안 준다고 부모를 살해까지 하는 사례가 종종 보도되고 있다.

이게 도덕의 붕괴와  불감증이 만연한 오늘의 현실이다. 선인들의 효행 시대와는 너무도 딴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독립운동의 선구자  김구선생은 어머님이 위독하자 칼로 자신의 허벅지 살을 떼어내어 어머니께 구워 드리고 흐르는 피를 입에 넣어드렸다고 한다. 우리들은 이러한 살신의 효행은 못해도 최소한 자식의 도리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에서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빛나던 등불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 동방의 찬란한 빛이 되리라.”라고 한국을 찬미했다. 우리 대한민국이 찬란한 문화와 예절의 나라 ,지식이 자유롭게 자라고 숭상되는 나라였기에 가능한 찬사였다.

그런가 하면 영국의 지성 아놀드 토인비는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전통이 바로 효도다”라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 세계적 지성들의 ‘한국 예찬론’을 어디로 숨겨 놓아야 낯을 들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부끄럽고 뼈아픈 마음에 할 말을 잊는다. 

우리 사회의 이러한  도덕 붕괴 현상은 이제 한 가정의 상황을 넘어  매우 심각하고 시급한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다. 더 이상 방치하면 국민윤리는 무너지고 정신문명은 퇴행하여 우리는 야만인과 다름없는 저열한 국민으로 전변할 것이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는 지금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교권이 추락되어 학생들에게 도덕 정신을 함양시킬 엄두도 못내고 있다.. 정치인들은 자기 정파나 지역이익을 위해서는 온갖 잡법 수준의 법안을 발의하면서도 사회정화와 도덕 재무장에 대한 제도 정비나 입법에는 무관심하다.

아니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현상은 일반 국민보다 정치인들이 더 심한 실정이다. 이들중에는 입만 벌리면 거짓과 위선, , 위법과 반칙을 자행하는 자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들이 국회의원이라고 법을 만들고, 국정을 담당해 보겠다고 설친다.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선량한 국민들을 모욕하는 천박한  추태다 .그러니 우리 국민 각자가 내  집에서부터 자식 손자에게 효의 규범과 정도를 철저히 훈육하여 고귀한 효와 도덕의  기풍을 진작시키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내 자식들이 내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이 네 부모에게 행하라”고 했다. 위대한 철인의 냉철한 교훈이다 우리 모두 이 현인의 교훈과 반포조 까마귀의 효심을 배워, 부모의 거룩한 자식 사랑에 대한 보은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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