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연기에 마을 전쟁터 방불..주민들, 조금리 마을회관으로 대피
“정신없이 핸드폰만 챙겨서 대피..살면서 이렇게 큰 산불은 처음”

화재 진압 헬기가 수시로 물을 퍼나르며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짙은 연기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지나영
화재 진압 헬기가 수시로 물을 퍼나르며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짙은 연기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지나영

"혹시라도 집에 불이 붙을까 걱정돼 막상 대피소에는 와서 지내고 있지만, 집 걱정도 되고, 가축 걱정도 되고 여기서 지내는 것도 편치 않으니까 뜬눈으로 밤을 새고 있다. 첫애를 낳고 40여년 전에 대호지면에 와서 여태까지 살았지만, 이번처럼 큰 산불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당진신문=지나영 기자] 예기치 못한 산불은 대호지면 일상생활을 멈추게 했다. 지난 2일 대호지면 사성리 야산 일원에서 수십여년만에 처음으로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검게 타들어 가는 산은 짙은 연기를 끊임없이 내뿜었고, 거센 바람에 불씨는 연기와 섞여 바람에 날리기도 했다. 

연기 너머 현장에 투입된 산불 진화 헬기는 수시로 물을 퍼나르며 진화 작업을 했고, 산 아래에서는 작은 연기가 보일 때마다 인력이 투입돼 진화 활동을 펼쳤다.

지난 2일 대호지면 사성리 일원 산에서 발생한 산불 모습. ⓒ당진시청 제공
지난 2일 대호지면 사성리 일원 산에서 발생한 산불 모습. ⓒ당진시청 제공
지난 2일 대호지면 사성리 일원 산에서 발생한 산불 모습. ⓒ당진시청 제공
지난 2일 대호지면 사성리 일원 산에서 발생한 산불 모습. ⓒ당진시청 제공

산불의 영향으로 발생된 짙은 연기에 사성리 일원에는 주민의 이동은 거의 없이 현장 활동 차량과 순찰차만 자주 보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초반에는 거센 바람을 타고 불길은 사성리 동쪽으로 번져 나가며 거주지와 축사 등을 덮쳐올 위기에 대피령이 내려졌고, 이주민들은 조금리 마을회관에서 3일간이나 지내야 했다.

산불 발생 이후 조금리 마을회관에 이주민 어르신들이 대피했으며, 어르신들 ​​​​​​​뒤로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 뉴스가 계속 전해지고 있다. 특히, 대형 산불로 놀랐을 어르신들의 심신을 위로하고 안정시키기 위해 당진시자원봉사센터의 재난심리지원단(사진 왼쪽)이 파견나왔다. ⓒ지나영
산불 발생 이후 조금리 마을회관에 이주민 어르신들이 대피했으며, 어르신들 ​​​​​​​​​​​​​​뒤로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 뉴스가 계속 전해지고 있다. 특히, 대형 산불로 놀랐을 어르신들의 심신을 위로하고 안정시키기 위해 당진시자원봉사센터의 재난심리지원단(사진 왼쪽)이 파견나왔다. ⓒ지나영

  

사성리의 한 주민은 “집 뒷산 너머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고, 첫날은 산 너머에서만 났다. 그런데 바람을 타고 불은 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면서 우리 주민들이 사는 집 바로 뒤까지 불길이 이어졌다”며 “화재 발생 2일째에는 집 뒤로 불길이 번져서, 이제 집 바로 뒤편에서 까맣게 탄 화재 흔적을 볼 수 있다. 당시에 연로하신 옆집 어르신들은 재빠르게 대피하셨다”고 설명했다.

사성리의 한 어르신은 “처음 불이 났을 땐, 산 너머에서 연기가 나더니 어느새 저기 보이는 대나무 숲을 태웠다”라며 불이 났던 상황을 설명했다. ⓒ지나영
사성리의 한 어르신은 “처음 불이 났을 땐, 산 너머에서 연기가 나더니 어느새 저기 보이는 대나무 숲을 태웠다”라며 불이 났던 상황을 설명했다. ⓒ지나영

사성1구에 거주하는 송영숙 씨는 “시청 직원들이 갑자기 집 뒤로 산불이 발생해 위험할 수 있으니까 대피해야 한다고 하는데, 뭘 챙길 정신도 없이 핸드폰 하나만 겨우 챙겨서 차량에 탑승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서 “혹시라도 집에 불이 붙을까 걱정돼 막상 대피소에는 와서 지내고 있지만, 집 걱정도 되고, 가축 걱정도 되고 여기서 지내는 것도 편치 않으니까 뜬눈으로 밤을 새고 있다”며 “첫애를 낳고 40여년 전에 대호지면에 와서 여태까지 살았지만, 이번처럼 큰 산불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듯 마을회관으로 대피한 주민들은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수시로 안부전화를 받았고, 4일 오전 산불이 어느 정도 잡히자, 그제서야 마을회관에 있던 주민 일부는 집으로 돌아가 가축과 귀중품을 챙길 수 있었다.

불씨가 도로를 건너 비닐하우스로 옮겨 완전히 타버렸다. ⓒ지나영
불씨가 도로를 건너 비닐하우스로 옮겨 완전히 타버렸다. ⓒ지나영
3일 헬기가 철수한 이후 거센 바람을 타고 불씨는 민가와 도로까지 내려왔고, 전날에는 지켜냈던 사성리 동쪽 부근은 완전히 잿더미가 됐다. ⓒ지나영
3일 헬기가 철수한 이후 거센 바람을 타고 불씨는 민가와 도로까지 내려왔고, 전날에는 지켜냈던 사성리 동쪽 부근은 완전히 잿더미가 됐다. ⓒ지나영

14개 의용소방대 집결, 진화작업 참여.."작은 불씨도 놓치지 않겠다"
당진지구협의회, 새마을지회 등 민간단체..식사준비 등 봉사 펼쳐
오성환 시장, 모든 일정 취소..3일간 현장에 상주하며 지휘, 격려

대호지면 사성리 산불은 거센 바람 탓에 불씨가 되살아나며 잡힐 듯 잡히지 않아 주민들의 애를 태웠다. 더욱이 오후 5시경 해가 지면 진화에 나섰던 헬기가 철수하기 때문에 잠잠했던 불길은 저녁 바람을 타고 다시 번지기 일쑤였다. 결국, 3일간 산불이 이어지며 지난 4일에 예정됐던 4·4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는 취소됐다. 

최길자 대호지면 새마을부녀회장은 “사실,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를 앞두고 김치도 새로 담그고, 많은 음식을 마련해놓고 있었는데, 산불이 발생하고 기념행사가 취소됐다”며 “즐거운 행사에서 함께 나누려고 준비한 음식은 산불현장에 투입된 분들과 이주민에게 나누고 있다”고 속상함을 드러냈다.

산불로 인한 어려움을 함께 나누려는 이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산불 발생 소식에 당진의 14개 읍·면·동 의용소방대는 산불현장에 달려가 진화 작업에 참여했으며, 대한적십자봉사회 당진지구협의회, 새마을지회 등 민간단체는 식사 준비를 비롯한 여러 활동에 참여했다.

안광준 우강면 의용소방대장은 “대호지면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읍면동 의용소방대가 대호지면으로 집결했다. 거센 바람으로 불길이 쉽게 잡히지 않아 힘든데, 의용소방대원들은 끝까지 작은 불씨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호지면 산불은 급격한 경사지에서 발생한 경우가 많았던 만큼 힘든 상황은 계속 있었다. 이 때문에 투입된 인력은 산을 오르며 체력을 상당히 소모했다.

잔불 진화에 당진시청 공무원은 물론 민간 봉사단체가 투입됐다. ⓒ당진시청 제공
잔불 진화에 당진시청 공무원은 물론 민간 봉사단체가 투입됐다. ⓒ당진시청 제공

산 중턱에서 잔불을 확인하고 내려온 대호지면 의용소방대 한 대원은 “잔불을 다 확인했다고 하는데, 어디선가 또 연기가 나기도 하고, 불씨가 바람을 타고 옮겨지니까 계속 산을 오르고 내리고 있다”며 “얼른 비라도 내리길 기다리고 있다. 비라도 내리면 인력들이 덜 고생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당진에 유례없는 대형 산불 발생에 공무원들도 뜬눈으로 밤을 샜다. 특히, 현장 대응단장을 맡은 산림녹지과 이기종 과장과 이경애 팀장은 상황실과 현장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오성환 시장 역시 화재 발생 직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3일간 화재 현장에서 상주하며 현장 상황을 지휘하고, 진화 작업에 투입된 인력을 격려했다.

산불 발생 직후 당진시는 대호지면 행정복지센터 주차장에 상황실을 마련했으며, 오성환 시장을 비롯한 각 기관 단체장은 현황 보고를 통해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당진시청 제공
산불 발생 직후 당진시는 대호지면 행정복지센터 주차장에 상황실을 마련했으며, 오성환 시장을 비롯한 각 기관 단체장은 현황 보고를 통해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당진시청 제공

당진시청 공무원들 역시 민가 근처 불을 끄는 것을 비롯한 화재 현장에서 낙엽을 일일이 긁어 잔불을 확인하며, 밤샘 작업을 이어갔다. 특히, 공무원들이 신은 운동화의 밑창은 뜨거운 화마를 이기지 못해 떨어져 나갔고, 산 밑으로 내려오면 뜨거운 불길에서 흘린 땀은 식어 체온 유지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4일 오전에 시청 청사로 출근한 한 공무원은 “어제 대호지면에 가서 오늘 오전까지 잔불을 확인하는 작업에 투입되고, 급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시청에 다시 들어왔다. 피곤하지만 진화가 거의 됐다니까 안심이다”라고 말했다.

적십자와 새마을지회에서 식사를 준비하며, 힘을 보탰다. ⓒ지나영
적십자와 새마을지회에서 식사를 준비하며, 힘을 보탰다. ⓒ지나영
적십자와 새마을지회에서 식사를 준비하며, 힘을 보탰다. ⓒ지나영
적십자와 새마을지회에서 식사를 준비하며, 힘을 보탰다. ⓒ지나영

68ha 피해..인력 1976명, 헬기 16대 투입
“피해 규모 늘어날 것..정확한 원인 파악 중”

이번 산불은 3일 만에 진화됐으며, 68ha에 이르는 산림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당진시에 따르면 2일 오전 11시 19분 대호지면 사성리 야산 일원에서 발생한 산불은 3일 만인 4일 10시 주불 진화를 마쳤고, 17시 완진에 성공했다. 

한때 거센 바람과 건조한 날씨 탓에 불길이 잡히지 않으며, 당국은 2일 저녁 19시 2분 산불 2단계로 격상했고, 충남도를 비롯한 경찰, 소방, 산림청 헬기가 투입돼 진화에 나섰다.

지난 2일 대호지면 사성리 일원 산에서 발생한 산불 모습. ⓒ당진시청 제공
지난 2일 대호지면 사성리 일원 산에서 발생한 산불 모습. ⓒ당진시청 제공

이번 산불로 인한 피해 규모는 68ha로 추정되고 있으며, 불길을 잡기 위해 3일간 헬기 16대를 포함한 장비 수십여대, 인력은 당진시청 공무원 1269명을 비롯한 소방대, 의용소방대, 경찰, 군부대 인원을 포함한 총 1976명이 투입됐다.

재산피해 규모는 산불 발생 초반 컨테이너 1동과 비닐하우스 1동 부분 손실 및 공장 외벽 그을림 등으로 잠정 집계됐다. 다만, 현재 잠정 집계된 피해상황은 산불 발생 초반에 발생됐던 것에 국한한 것으로, 앞으로 인목 피해를 비롯한 농경지, 가옥 등에 불씨가 옮겨 붙어 발생한 피해나 그을림 등을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산불 원인으로 성묘객의 담뱃불로 추정하고 있지만, 당진시는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당진시 산림녹지과 관계자는 “이번 산불은 바람도 거셌지만, 건조한 날씨의 영향을 받았다. 산불 신고를 접수하고, 즉시 대호지면으로 선발대가 현장에 도착했으나, 이미 산불은 최초 발화지점을 넘어 마을 인근으로까지 넘어오던 상황이었다”며 “특히, 야산에 대나무 숲이 있었는데, 건조한 날씨 탓에 모두 말라 있어서 불에 쉽게 탈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담배꽁초나 그런 것은 발견된 것은 없으며, 정확한 화재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마을 주민들의 의견도 듣고, 조사를 더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피해 규모는 늘어날 수 있다. 우선, 인목 피해도 파악해야 하고, 불씨가 날라다니며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했을 수 있으며,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잿더미로 돼버린 산의 경계선에 진달래가 봄의 희망을 전하고 있다. ⓒ지나영
잿더미로 돼버린 산의 경계선에 진달래가 봄의 희망을 전하고 있다. ⓒ지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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