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당진여성네트워크 대표

김진숙 당진여성네트워크 대표. ⓒ당진신문
김진숙 당진여성네트워크 대표. ⓒ당진신문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돌아보면 2022년 올 한해도 젠더폭력은 지속되었다. 여성들은 아파트 주차장, 백주대낮의 거리, 공공시설의 화장실, 학교 안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생명을 위협받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당진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지난 11월 11일 충남 당진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는 40대 남성이 연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의 몸에 불을 붙인 뒤 달아난 사건이 발생했다.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여성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던 끔찍한 사건은 데이트폭력이라고 지칭되는 순간 연인 사이에 일어난 사적인 일로 치부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여지가 매우 커진다.

당진경찰서 통계에 따르면, 작년 대비 올해 이러한 연인간의 폭력사건 신고 건수는 50여 건에서 200여 건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서산시 동문동에서는 10월 4일 백주대낮에  50대 남성이 아내를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아내는 경찰에 네 차례 가정폭력 피해를 신고했지만 결국 목숨을 잃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생활패턴, 근무지 등 정보를 알기 쉬운 가정폭력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채 형식적인 보호만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7월 15일 인하대 남학생은 같은 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한 뒤 학교 건물 3층에서 떨어트려 숨지게 했다. 사건이 이후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왜 늦게까지 술을 마셨냐 등 사건의 원인을 피해자 ‘개인 탓’으로 돌리는 댓글이 계속 올라왔던 것도 문제였지만 원인을 파악해 예방 대책을 내놔야 할 정부도 입장이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 더 문제였다. 여성가족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인하대 성폭행 사망사건은 안전의 문제이지 여성폭력이 아니다 라며 국가나 정부가 대안을 마련하고 책임진다는 자세는 보이지 않았고 학교에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올 한해 젠더폭력은 전국적으로, 또 우리지역에서 심각한 양상으로 벌어져왔다. 이러한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젠더폭력을 ‘사회구조적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인식과 범행에 무기력한 ‘제도의 구멍’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정부가 젠더폭력 사건이 공론화될 때마다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가리고,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고 있는 모습이 반복되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오랜 기간 동안 만들어온 여성운동의 성과로 젠더 폭력 사건을 ‘불쌍한 피해자’ 즉 개인의 사건으로 바라봐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공감대를 이끌어내었는데 정부는 개인이 알아서 풀어야 하는 문제로 돌리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최근 정부가 내년부터 시행될 ‘양성평등정책’에서 ‘여성폭력’이라는 용어를 삭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정책용어로 수십 년간 사용하던 ‘여성폭력’, ‘젠더폭력’ ‘성별에 기반한 폭력’이라는 용어 대신 모두 ‘폭력’으로 일괄 변경했다. 폭력문제에서 젠더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고 숨기려고 하는 것이 정당한지 의문이 든다. 더구나 여성폭력이라는 용어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서도 사용되는 법정용어이자 정책용어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대신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한다는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젠더폭력문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실태를 조사하고 통계를 작성하고 종합계획을 수립, 점검하고 명시적으로 홍보해야 대응할 수 있다. 이러한 대응을 실효성 있게 하려면 예산을 수립하고 정부입법을 할 수 있는 전담부처가 반드시 존재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난 10월에 여성가족부 폐지를 골자로 하는 조직개편안이 발표하였다. 

중앙 정부에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려하자 지방 여성 정책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당진 역시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당진시가 여성친화도시 TF팀장을 맡아 수행해온 전문관의 갑작스러운 재계약 불가 통보와 여성친화도시 TF 해체설까지 나오면서 여성 관련 정책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충남에서도 성평등지수가 최하위에 포함되어 있던 당진에서 지난 2년간 여성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등 혁신적인 사업을 시도해왔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욱 당혹스러웠다. 여성친화도시 3단계로 지정받은 당진시가 여성정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전문관과 전담부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젠더폭력은 성평등을 위한 사회·문화적 인식 개선과 정부와 지자체가 관련 통계 집계, 연구, 예방책 마련 등을 통해 전 사회적 영역에서 해결돼야 할 문제이다. 성차별에 대한 대응 노력 없이 성폭력에 대응하는 것이 가능한가? 절대로 불가능하다.

젠더폭력이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라는 점, 즉 차별에서 비롯되며 다시 차별을 공고히 하는 효과를 갖는다는 점이 젠더폭력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가 젠더 폭력을 구조적인 문제로 보고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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