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달 기획3] “유족이라는 허울 좋은 굴레 속에서 살았다”
[호국보훈의달 기획3] “유족이라는 허울 좋은 굴레 속에서 살았다”
  • 김정훈 미디어팀장
  • 승인 2022.06.25 14:00
  • 호수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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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몰군경 유족회 당진시지회 ‘임명택’ 지회장

[당진신문=김정훈 미디어팀장] 6월에는 대한민국에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날들이 많이 있다. 6월 1일은 의병의 역사적 가치를 일깨우는 의병의 날, 6월 6일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신 호국영령을 위한 현충일, 6월 25일은 대한민국의 가장 아픈 상처인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로 흔히들 ‘6월을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한다.

호국(護國) 보훈(報勳) 즉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위하여 힘쓴 사람들의 공훈에 보답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과연 얼마나 그분들의 공훈에 대해 보답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당진신문은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나라를 위해 애쓰신 분들을 찾아가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신 그분들에게 들어보는 그때의 얘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나 외국의 전쟁과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의 주요 소재는 대부분 전쟁의 영웅들이 전투나 작전을 치르며 나타나는 배경이 중심을 이루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죽은 군인들의 가족들이 겪는 삶의 고통은 어디를 봐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특히나 1950년대 우리나라에서 전쟁의 아픔을 겪은 가족들의 힘든 삶은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나라가 해방된 지 5년밖에 지나지 않은, 먹고살기 힘든 상황에서 전쟁은 한마디로 그냥 앉아서 죽으라는 얘기였다는 것이다. 

이번에 만날 대한민국 전몰군경 유족회 당진시지회 임명택 지회장이 겪은 삶이 그런 삶이었고, 전쟁 때 부모를 잃거나 가장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그랬다.

임명택 지회장이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나서 한 첫 말은 “참 살기 어려운 때였다”고 했다. 1950년 6월 25일 임명택 지회장의 가족은 석문면 교로리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와 위로는 12살, 9살, 8살이던 누나 셋과 5살이던 본인이 있었는데, 전쟁이 터지자 선친께서 동네의 지인과 바로 자원입대를 했고 그 후 2년 만인 52년 아버지는 연천전투에서 전사한 뒤 백골이 되어 가족에게 돌아왔다. 그때가 아버지 나이는 27세. 한창 자식들의 재롱을 보며 가족을 위할 나이였던 것이다. 

임명택 지회장은 전쟁을 겪은 지가 72년이나 됐지만, 6월이 되면 혼잣말처럼 내 뱉는 말이 있다. “1남 3녀의 가장이던 아버지가 왜? 어째서?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놔두고 자원입대해 전쟁터로 향했을까? 과연 집에 있는 아이들의 걱정을 진심으로 해 봤을까?”

임명택 지회장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 대해 “어려서 잘 기억은 없지만 나중에 동네의 어른들에게 들은 바로는 성격이 불같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운동도 잘해 동네 씨름 대표로 나가는 등 몸이 좋았다”며 “하지만 아버지의 전사 후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전쟁고아나 다름없었다고 회상하는 임명택 지회장은 “전쟁 때 우리나라에 전쟁고아들이 참 많았는데 거의 세 살에서 다섯 살 나이의 아이들이 참 많았다”며 “도시 같으면 껌 팔고, 구두 닦고, 얻어먹는 생활을 했고 외국으로 입양된 아이들은 그나마 괜찮은데 여기는 시골이라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6·25 전쟁당시 당진 전사자는 경찰 33명, 군인 348명, 행방불명 65명으로 군경을 합쳐 총 446명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950년 이후 전쟁으로 사망한 대한전몰군경유족회 영현명단.
1950년 이후 전쟁으로 사망한 대한전몰군경유족회 영현명단.

임명택 지회장은 집으로 돌아온 선친의 유골도 실은 선친의 유골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을 꺼냈다. 임 지회장은 “당시 전사자들의 시신을 담당했던 분들에게 들었다”며 “시신을 모두 한곳에 모아 화장을 한 후 유골을 함에 넣어 집으로 보내면 그게 누구의 유골인지 어떻게 알겠나. 다만 전사한 분들이 모두 아버님이라 생각하고 지금껏 매해 정성들여 제사도 지낸다”고 말했다.

임명택 지회장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바로 ‘전사자에 대한, 나라를 위한 이에 대한 예우’다. 이는 비단 임명택 지회장뿐만 아니라 나라를 위해 희생한 모든 분들이 아쉬워 하는 부분이다. 

특히 6·25 전몰 미망인의 경우 다섯 분만이 생존해 계시고, 그 분들 역시 70여년의 세월을 정말 힘들고 어렵게 살아왔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사자의 가족을 국가가 돌봐주고 품어줘야 하는데 국가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당진 나라사랑공원 내 현충탑 앞에는 나라를 위해 전쟁으로 산화하신 906위의 호국영령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당진 나라사랑공원 내 현충탑 앞에는 나라를 위해 전쟁으로 산화하신 906위의 호국영령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임명택 지회장은 “과거에는 전사자 가족에 대한 연금의 지급을 1년에 한번 현찰로 지급했는데 그것도 수령자가 20세가 되면 주지도 않았고, 연금을 수령 할 때마다 보험료 명목으로 공제해 지급 했다”며 “지금이라도 그때 공제한 보험료라도 지급해 줬으면 한다”는 소망을 전했다.

이어 “국가에서 잘 하지 못하는 보훈단체들에 대한 예우를 그래도 당진시에서는 나름 성의 있는 지원을 해주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전쟁이 끝나고 지금까지 70년 이상을 ‘전사자 가족’이라는 ‘유족’이라는 허울 좋은 굴레 속에서 살았다”며 “매년 현충일 같은 행사에서 대통령이든 총리든 ‘최선을 다해 유족과 유공자를 지원하겠다’는 단순히 지나가는 말이 아닌 진심으로 국가가 예우를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