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주 수필가, 대전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이득주 수필가, 대전수필문학회 사무국장 ⓒ당진신문
이득주 수필가, 대전수필문학회 사무국장 ⓒ당진신문

어머니와 추억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십여 년 전 진달래가 곱게 피던 날이다. 그때를 그리워하며 당진을 찾는다. 어머니가 어릴 적 소풍하였던 곳, 가까운 친척과 친구가 살았던 동네를 찾아보고 외할머니가 잠들어 계신 산소를 둘러보는 하루 일정이었다. 

팔십여 년 세월이 흘렀건만 가는 곳마다 새록새록 기억이 나는지 온종일 소녀처럼 즐거워하셨다. 여기 오길 참 잘했다며 옛이야기를 끝없이 들려주셨다. 해 질 무렵 외할머니 산소에 가서는 무릎을 꿇고 “엄마 나 마지막으로 왔어” 하며 눈물을 보이셨다.

변덕 심한 게 봄 날씨라더니 오늘이 그렇다. 어젯밤까지 쾌청했는데 잔뜩 화가 난 얼굴이다. 찬 바람까지 거세게 불었다. 

고속도로를 한 시간쯤 달렸을까. 창밖으로 보이는 들판은 제법 파릇파릇했다. 하얀 도화지에 파란 크레파스를 문질러 놓은 듯 새 생명이 돋아났다. 면천 나들목에서 영탑사로 가는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건 길가의 조그맣던 벚나무였다. 아직 꽃봉오리에 봄물이 올라오진 않았지만, 세월의 흐름을 먹고 늠름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당진의 고찰 ‘영탑사’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일주문처럼 서 있는 사백 살 느티나무가 고향 사람임을 알아보고 반가워한다. 크고 작은 전각들이 우거진 송림 속에 한가롭게 자리를 잡은 조그만 사찰이다. 조용한 산사에서 마음의 평온을 느낀다. 절 마당에 있는 목련이 곧 꽃봉오리를 터트릴 듯 만삭의 여인처럼 배가 불렀다. 

상왕산 영탑사는 통일신라의 승려 도선 국사가 창건했다. 영탑사에는 국가 보물인 ‘금동비로자나삼존좌상’이 있다. 부처를 바라보니 살아 있는 사람처럼 지극히 온화해 보인다. 오래된 불상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1975년 도굴꾼에게 도난당해 밀반출되려던 것을 간신히 찾았다고 한다. 

영탑사에서 십 분 거리에 있는 ‘면천 읍성’을 찾았다. 둘레가 1.2km나 되는 조선 초기 성곽이다. 성안이 지금은 한적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수령이 업무를 보던 관아가 있었고 많은 주민이 농사를 지으며 고단한 삶을 살았던 곳이다. 

안내판을 보니 1439년에 완성됐고 왜구의 약탈에 대한 방어 기능과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 관아가 있던 자리는 면사무소가 들어섰고 객사는 공립학교로 사용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읍성의 돌도 시설을 보수하거나 인근 저수지 건립에 사용되는 등 주민 못지않게 수난을 당했다. 

면천 읍성은 얼마 전까지만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허물어지고 풀숲에 가려져 있었다. 최근 문화재 정비로 성곽과 남문은 원형을 되찾았고 객사 등 관아시설도 속속 복원공사 중이다. 남문 위에 올라 성곽을 따라 걸어 보았다. 오백여 년 전 백성들이 맨손으로 이 거대한 성을 쌓았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온다. 

옛 면천초등학교 터에는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의 딸 영랑이 심었다는 11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국가 천연기념물이다. 

이곳 출신 복지겸 장군이 낙향 후 병이 들었다. 온갖 좋다는 약을 다 사용해도 병이 낫지 않았다. 그의 어린 딸 영랑이 아미산에 올라 백일기도를 드렸다. 어느 날 신선이 나타나 아미산에 핀 진달래꽃으로 술을 빚어 백일 후에 마시게 하고 뜰에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으라 했다. 

효심이 지극한 딸이 신선이 시키는 대로 하자 아버지 병이 깨끗이 나았다고 한다. 부모를 극진하게 공경한 영랑의 혼이 은행나무에 남아 1,100년 지났어도 면천을 아름다운 마을로 지켜 주는 것 같다. 

1905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우체국 건물이 지금까지 보존돼 최근 카페로 문을 열었다. 입구에 세워진 우체통부터 건물 내·외관 모두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971년 세워진 두 번째 우체국도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다. 창밖으로 저잣거리 풍경이 평화롭게 펼쳐지고 테라스로 나가면 영랑이 물 뜨러 다녔다는 효 공원이 내려다보인다. 

오래된 우체통, 초등학교에서 옮겨온 책걸상 등, 곳곳에서 70년대 물건을 보며 지난 추억을 더듬어 볼 수 있었다. 

옥상에 오르니 또 다른 면천의 모습이 보였다. 조그만 언덕 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숲에서는 참새들이 신나게 재잘대고 있었다. 참새들도 친한 친구가 있는지 가까이 모여 노는 모습이 한없이 정겨웠다. 

점심때가 되어 고향 친구를 찾았다. 맛있는 집을 소개 하라고 하니 저수지 앞 어죽 집을 알려 준다. 면천엔 어죽, 콩국수, 추어탕이 유명하다. 모두 수십 년씩 대를 이어온 맛집들이다. 

깍두기 반찬과 함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죽이 나왔다. 국물부터 한입 떠본다. 깻잎과 들깨가 듬뿍 들어가 냄새부터 향긋했다. 어죽에 들어 있는 민물새우 때문인지 국물 맛도 일품이다.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나 옛이야기도 나누고 고향 음식도 먹으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다음엔 추어탕을 먹어 보자며 맛집을 소개해 준다. 

면천 읍성에서 남쪽으로 나오면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 선생이 군수로 있을 때 만들었다는 연못 골정지와 건곤일초정 정자가 보인다. 이 정자는 당시 향교의 유생들이 찾아와 시를 읊고 학문을 익히는 장소로 쓰였다고 한다. 

봄이면 연못을 둘러싼 벚꽃들로, 여름에는 연못 위 연잎들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연못 주변을 따라 향교 앞까지 시골 풍경을 감상하며 걸었다. 이곳에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는 박지원 선생이 제자가 찾아온 줄 알고 부를 것 같아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넘어가는 오후 햇살이 어머니 품처럼 따스했다.

요즘 당진을 찾는 여행객이 조금씩 늘어난다고 한다. 여행 이야기가 넉넉하고 고풍스러운 카페와 맛있는 전통 식당들이 속속 들어차는 고향이 대견스럽다. 

장고항에 실치가 잡히거나, 고향 뒷산에 상수리가 마구 떨어질 때, 그리고 어머니가 문득 생각나는 날이면 다시 당진을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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