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달 기획1] 죽음의 공포에서 살아 돌아오다
[호국보훈의달 기획1] 죽음의 공포에서 살아 돌아오다
  • 김정훈 미디어팀장
  • 승인 2022.06.11 12:00
  • 호수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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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상이군경회
당진시지회 박덕환 지회장

[당진신문=김정훈 미디어팀장] 6월에는 대한민국에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날들이 많이 있다. 6월 1일은 의병의 역사적 가치를 일깨우는 의병의 날, 6월 6일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신 호국영령을 위한 현충일, 6월 25일은 대한민국의 가장 아픈 상처인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로 흔히들 ‘6월을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한다.

호국(護國) 보훈(報勳) 즉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위하여 힘쓴 사람들의 공훈에 보답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과연 얼마나 그분들의 공훈에 대해 보답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당진신문은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나라를 위해 애쓰신 분들을 찾아가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신 그분들에게 들어보는 그때의 얘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월남전파병, 국가에게는 발전이었지만... 
참전 용사들에게는 큰 아픔 남긴 전쟁

우리나라에서는 국가를 위해 애쓴 분들을 위해 법으로 정해 지원하는 보훈단체가 있다.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전몰군경 미망인회, 전몰군경 유족회, 무공수훈자회, 광복회 그리고 월남참전자회, 6.25참전유공자회, 고엽제전우회, 특수임무유공자회 등 단체다. 

이번호에는 현재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당진시지회장이며 당진시 국가유공자 보훈단체장협의회 협의회장도 겸하고 있는 박덕환 지회장을 만나 월남전 파병 당시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1970년대 대한민국은 6.25전쟁 이후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급격히 발전하는 계기가 된 시기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라의 발전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며 독일이나 베트남 등 타국에서 몸 바친 분들이 있음을 우리는 매스컴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당진시지회 박덕환 지회장도 그 분들 중 한 명이다.

약관의 나이에 상병계급으로 군 생활을 하던 중 나라의 부름으로 배에 올라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박덕환 지회장은 전투부대인 맹호부대 소속으로 월남전에 파병됐다.  

월남에 파병된 박 지회장은 10여 일간의 뱃멀미를 이기고 남 베트남의 퀴논에 도착했다. 당시 박덕환 지회장이 소속된 맹호부대(수도사단)는 건설지원단인 비둘기부대의 파병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파병된 제1호 전투부대이며 초대사단장이 그 유명한 채명신 장군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맹호부대는 파병 이후 미 해병 제7연대로부터 1200㎢에 대한 전술 책임 지역을 인계받았으며, 총 17만5107회의 전투를 통해 남베트남 정부의 지역평정사업을 지원했다. 

특히 맹호부대는 한국군 특유의 전술기지 운용과 함께 한국군의 용맹성과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과시했을뿐 아니라 주둔지인 퀴논 지역에 문화센터와 학교건설 등의 대민 지원사업을 통해 주민들로부터도 신뢰를 받는 한국군 상(像)을 정립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박 지회장에게 월남전 당시 가장 힘들었던 때를 묻자 “처음 월남에 도착했을 때는 많이 무서웠다. 함께 생활하던 전우들이 옆에서 적의 총탄에 쓰러지면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며 겁이 많이 났다”고 회상했다.

박 지회장이 제일 기억에 남는 전투는 맹호71-2호 작전인 푸캇산 전투다. 적도 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아군도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전투였기 때문이다.

박 지회장은 “한국군이 제일 공포스러워 했던 것은 바로 베트콩들이 설치해 놓은 부비트랩이다. 베트콩들은 이것을 설치해 놓고 별도의 자기들만 아는 길로 다니지만, 그것을 모르고 수색을 하던 아군들은 설치 위치를 모르니 지나가다 줄을 건드려 폭발해 사상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박 지회장은 1년 3개월여의 베트남 전쟁에서 그나마 큰 부상 없이 잘 버텼지만, 전역을 앞두고 매복작전에 나갔다가 헬기 레펠 도중 늪 지역의 깊은 습지에 빠져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이때 물에 빠진 동료들도 고생을 많이 했지만 본인도 양쪽 귀에 물이 들어가 귀국 후 여러 번의 수술을 했지만 결국 지금의 상이군경이 되고 말았다. 

전쟁 후 베트남을 다시 방문해 봤냐는 질문에 “1998년경 전적지 순례로 다시 베트남을 찾아 전투를 치렀던 지역을 갔을 때는 먼저 간 동료들 생각에 참 많이 울었다”며 “그만큼 베트남전은 국가에게는 발전의 계기가 됐지만 우리 같은 참전 용사들에게는 큰 아픔과 생채기를 준 안타까운 전쟁이었다”고 말했다. 

박 지회장은 “현재 6.25 참전 용사의 경우 현재 90대 이고, 월남전 참전용사의 경우도 70대가 넘으신 분들이 많은데 나라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희생을 하며 국가를 위해 공헌을 했지만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에 아쉬움도 크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물론, 당진시의 경우 주기적인 전적지 순례라던가 수당의 지급이 타 지자체 보다는 좋지만 그래도 많이 부족하다”며 “특히 월남전 참전용사의 경우 당시 전투 수당이 지급되면 정부에서 그것을 공제하고 단순히 월급만 지급을 했다. 지금이라도 그 당시의 수당을 다시 지급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