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장애를 어루만지는 
멀티 퍼커셔니스트 ‘정건영’ 

멀티 퍼커셔니스트 정건영 교수 ⓒ정건영 교수 제공
멀티 퍼커셔니스트 정건영 교수 ⓒ정건영 교수 제공

[당진신문=김정아 시민기자] 충남 예산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세한대 정건영 교수는 분당 1,142타, 현재 1,200타를 돌파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손을 가진 타악기 연주자다. 

2000년 혈혈단신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나 빈국립음대를 최우수성적으로 졸업했고, 이후 2004 오스트리아 페스테스트 타악기 콩쿠르에서 1위로 입상했다.

30대 동양인 최초 비엔나국립음대 초청교수, 서울예술의 전당, 쉔부른 오페라극장 등에서 공연을 펼친 엘리트 음악인 등 이력도 화려하다. 

하지만 10년 전 아버지의 부고로 홀로 농사를 짓고 계신 어머니 곁을 지키기 위해 2018년 고향 예산으로 돌아왔고, 현재 틈틈이 어머니의 농사일을 도우면서, 집과 멀지 않은 당진 세한대 실용음악과 학과장을 맡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 장애인 학생들로 이루어진 ‘해늘합주단’을 만들어 누구나 소통할 수 있는 음악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정건영 교수. 그를 만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타악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처음부터 타악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식 때 관악부 연주에서 보았던 은빛악기(트롬본)에 반해 음악실을 기웃거리다가 운 좋게 모든 악기들을 만져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맘에 들었던 트롬본은 팔이 짧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고, 음악실을 나서는데 드럼을 치던 선배를 만나 타악기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군대를 제대하고 유학을 가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음대 입시를 도와주겠다던 지인에게 오스트리아에서 사기를 당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음악 공부는커녕 식당에서 하루 종일 접시를 닦아 생계를 이어가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무비자로 3개월을 체류할 수 있는데 그 기간이 지나 불법체류자 신세까지 겪었습니다. 

다행히 신도 수가 얼마 되지 않는 한인교회에서 만난 이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빈국립음대에서 시험을 치러 18명 가운데 유일한 합격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Q. 특수아동들로 이루어진 ‘해늘합주단’을 만드셨다고요?

당진지역 특수아동들이 참여하는 해늘합주단은 올해로 창단 4년이 되었습니다. 창단 첫 해는 당진정보고 특수학생 8명, 당진고 특수학생 4명 등 총 12명으로 시작했고, 2020년에는 합덕고 특수학생 10명과 함께 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당진꿈나래학교 특수학생 4명과 합덕고 특수학생 6명으로 구성돼 활동했고, 올해는 당진꿈나래학교 특수학생 8명, 합덕고 특수학생 3명 총 11명으로 구성돼 공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당진지역 특수 아동들이 참여하는 해늘합주단의 공연 모습. ⓒ정건영 교수 제공
당진지역 특수 아동들이 참여하는 해늘합주단의 공연 모습. ⓒ정건영 교수 제공

이 아이들은 타악기 연주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의사 표현력을 기르고 자신감을 높여 나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마음의 장애를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며 행복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Q. 음악의 힘은 무궁무진한 것 같습니다. 

음악은 여러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발달장애인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저는 사실 소통의 속도 문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조금 느리게 말하고 느리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1분에 1,142타를 치며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손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저도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학할 때에는 대표적인 느린 사람, 모자란 친구로 통했어요. 독일어가 안되니까 그들 눈에 저는 말 못 하는 학생이었죠. 그때 어렴풋이 발달장애인들의 마음을 알게 됐습니다. 저도 늦깎이 였으니까요.

당시 제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는 언어가 아니라 악기였습니다. 발달장애 아이들과 함께 음악을 하다 보면 그 아이들이 타악기로 표현하는 세상이 느껴집니다. 

Q. 늦깎이 음악가임에도, 음악에 대한 철학이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음악가는 단순히 악기를 연주하는 기술자가 아닌, 자신만의 철학과 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고향을 떠나 낯선 외국에서 온갖 역경을 극복해 오면서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됐고, 음악이 진정 가야 할 곳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어야 하고 특히 세계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 늙고 지친 사람들이 메마르게 사는 곳, 때로는 배고픈 곳, 그런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음악 뿐 아니라 사회복지, 환경, 노동분야에도 관심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음악이 진정으로 가야 할 곳을 고민하다 그 해답이 무대나 연습실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전국의 아픈 사람과 상처받는 곳을 찾아 음악으로 그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재난은 공평하게 오지 않습니다. 또한 재난은 약자들이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몫이 더더구나 아닙니다. 음악을 통해 기쁨, 희망, 평화, 형제애,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의 마음의 건강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멀티 퍼커셔니스트 정건영 교수 ⓒ당진신문 김정아 시민기자
멀티 퍼커셔니스트 정건영 교수 ⓒ당진신문 김정아 시민기자

Q.어떻게 보면 화려했던 이력을 뒤로하고 인생 제 2막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지금처럼 치유와 희망이 필요한 고통 받고 내몰린 현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음악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천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소통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아 왔던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치유와 위로의 새로운 음악 세상을 열어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할 계획입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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