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은퇴가 없다..서글픈 고령농의 모내기
농사는 은퇴가 없다..서글픈 고령농의 모내기
  • 김진아 PD
  • 승인 2022.05.28 18:00
  • 호수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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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된 농촌의 현실..“기계화 따라가기 어려워”
이앙기에 모를 싣고 있다. 물이 빨리 떨어지는 논은 빨리 자라는 삼광 종을 심는다.
이앙기에 모를 싣고 있다. 물이 빨리 떨어지는 논은 빨리 자라는 삼광 종을 심는다.

[당진신문=김진아 PD] 모내기가 한창인 요즘, 복잡한 당진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보면 사방으로 펼쳐진 논에는 파릇파릇한 모들이 열을 맞추고 있다. 찰랑거리는 물이 파란 하늘을 머금고 반짝이는 모습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23일 찾은 송산면 무수리의 한 논. 뜨거운 햇볕 아래 농부들은 모내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적당한 크기가 될 때까지 정성껏 키운 모를, 물이 찬 논가로 옮기고 이앙기에는 비료를 실었다.

57년의 농사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농사꾼 김성만(73/송산면) 씨가 이앙기에 모를 실으면 그의 아들이 운전을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김성만 씨의 아내는 논 주변을 정리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세 사람은 손발이 척척 맞는 한 팀이었다.

‘착착’ 소리를 내며 이앙기가 지나가는 자리에는 여섯 줄로 모가 심기고 그 위에 비료가 뿌려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신현화 씨는 “요즘엔 다 기계화가 됐는데 기계화되기 전에는 죽~는 줄 알았어. 그때는 온 동네가 같이 심었는데 하루종일 심어도 얼마 못 심으니까 서로 좋은 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싸우기도 했고, 삽교천물이 없던 시절에는 서로가 물싸움도 많이 했어. 삽교천도 생기고 경지정리까지 하고 나서는 농사짓기가 진짜 편해졌지”라며 농사일에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하던 옛날을 회상했다.

더  많이 자란 모를 먼저 심기 위해 고르고 있다.
더  많이 자란 모를 먼저 심기 위해 고르고 있다.

언젠가부터 한집, 두집, 경운기·트랙터·이앙기 등 각종농기계를 구비하게 됐고 제초제가 발달하면서 적은 인원으로도 제초작업이 가능해졌다. 지금도 농약살포용 드론과 배 등 일손을 덜어 줄 기계들이 꾸준히 개발·보급되면서 농촌 일손은 많이 줄고 있다.

하지만 농기계가 발전할수록 농민들은 새로운 기계를 사야 했고 배워야 했다. 나이가 자꾸 들어가는 탓에 새로운 기계를 배우기도, 비싼 기계를 구매하기도 만만치 않았다.

김성만 씨는 “옛날 같으면 다들 젊으니까 이 정도 기계만 보급됐어도 편했지... 지금은 다들 나이가 많아져서 땅이 있어도 해먹을 힘이 없으니까 다 맡기는 거야. 써레질도, 모도, 이앙작업도 다 사서하거나 그것도 어려우면 다른 사람에게 임대해 주지. 그것도 돈이 있어야 하지만...”이라며 고령화된 농촌의 상황을 꼬집었다.

예전 같으면 종일 걸렸을 구간의 모내기를 벌써 마친 세 사람은 트럭에 이앙기를 싣고 이웃의 작은 논으로 향했다. 비싼 값에 농기계를 구매하기 어려운 소농들은 주로 기계가 있는 집에서 빌려 모를 심기 때문에 이앙기가 있는 집들은 모내기철에 조금 더 바빠진다.

김성만 씨의 아들은 이앙기 운전이 능숙했다. 기계가 빠지는 구간이 있어 걱정했던 이웃 논의 주인은 어려운 구간도 척척 심어내는 모습을 보며 “저 집 아들은 꼭 전문가처럼 잘해”라고 칭찬하면서도 고령화로 인해 기계화에 따라가기 어려운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이앙기가 없는 이웃집의 모를 대신 심어주는 모습. 빠지는 논도 척척 심어낸다.
이앙기가 없는 이웃집의 모를 대신 심어주는 모습. 빠지는 논도 척척 심어낸다.

“지금 기계 없는 사람은 농사도 못 지어. 아 얼마나 좋은 세상이여. 정보화 시대, 기계화 시대. 그런데 농민들이 고령화 되고 보니께, 우리덜은 거기에 미치지 못하잖어... 젊은 사람들이 있어야 기계화에 따라가서 수입이 되고 그러는데 소농들은 특히나 더 하지. 익혀야 되고 지출도 많고 그래서 우리들은 수입이 더 줄어들어. 내가 실제로 피부에 느끼는 게 그거여” 라고 토로했다.

김성만 씨는 올해 나이 73세지만 마을에서는 아직도 청년이다. 그만큼 농촌 사람들의 평균연령은 매우 높아졌다. 몇 년 전만해도 직접 이앙기를 몰았던 김성만 씨는 자꾸만 먹어가는 나이 탓에 이제는 아들에게 운전대를 넘겨주었다. 얼마 전에는 무선으로 조종하는 농약 살포용 배도 구매했다. 평소 취미로 드론을 날리는 등 기계에 능한 아들이 조종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김성만 씨는 “농사는 은퇴가 없으니께, 나이가 많아도 내가 조금 고생하면 자식들이 안 사먹어도 된다는 생각에 계속 농사를 짓는 거여. 도시에 살면서 스트레스에 우울증에 얼마나 고생해.. 자식들이 쌀도 가져가고 양파도 가져가게 하려고 조금씩이라도 다들 자기가 먹을 거는 짓는 거야. 우리는 이런 거라도 해주고 싶지”라며 타지에서 고생할 자식 생각에 농사를 놓을 수가 없다는 부모의 마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