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린 당진북부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당진신문=김혜린]

고객센터 상담원의 영혼은 없으나 친절한, 또는 과하게 포장된 말투의 안내 음성은 언제 들어도 불편하다. 그분들의 그런 태도가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감정은 묻어버린 채 조직이, 또는 고객이 원하는 감정을 연기하고 표현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고작 별점과 평가 하나로 개인의 삶과 생계가 좌지우지 되고 실제로 이러한 평가 방식이 일명 ‘진상 고객’이나 ‘갑질 고객’을 더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감정노동자란 깨나 큰 범주에 속하지만 우리는 가장 먼저 서비스직을 떠올린다. 개인의 생활 편의를 증진하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무형의 노무를 제공하는 직종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사회복지와 서비스업은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서비스업의 욕구 충족은 수익 창출을 위한 수단과 방법일 뿐, 사회복지와는 다르다. 사회복지란 개인이 죽어가고 있음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일들로 수익 창출이 아닌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이 궁극적인 가치이자 도달하여야 할 목표다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전화를 받을 때 꽤 오랫동안 썼던 문장이다. 수 없이 이 문장을 내뱉으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다른 기관의 전화번호를 묻는 전화를 다섯 번째쯤 받았을 때였던 것 같다. 문득 내 역할은 무엇이며 어디까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친한 직장 동료는 신변 위협을 받기도 했다.

“밤 길 조심해라.”, “너는 부모도 없냐?”, 등의 걱정 어린 말들을 해주실 때도 있었다. 며칠 전 민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민원 내용을 확인했고 사실관계를 파악하였으며 그분의 감정에 깊이 공감했다. 

그 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안타깝게도 복지관에서 도와줄 수 없는 부분이기에 다른 곳에 문의 해 볼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네가 알아서 하라며 언성을 높이고 내 말은 무시한 채 자기 말만 들으라는 식의 태도에 너무 불쾌한 감정에 휩싸였다.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인내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1915년 플렉스너가 「사회사업은 전문직인가?」라는 논문이 발표한 이후 사회사업가들은 그가 비판한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후에는 그의 주장이 경험적인 연구결과가 아니며 이를 증명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사회복지가 전문직으로서의 체계와 권위를 갖추는데 큰 원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사회복지가 전문직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분위기이며 아직까지도 이를 위해 많은 종사자들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이 왜 이렇게 유독 어렵고 더디기만 한걸까? 바로 실제 현장에서 대부분의 사회복지사들은 전문가가 아닌 그저 감동노동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민원인과의 관계 속에서 생긴 마찰로 인한 우울감과 높은 자살률 등이 실제 현장에 있는 종사자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이다. 

서비스직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다. 서비스직이 생겨난 이후 엄청난 경제적 성장이 이루어졌으며 개인의 생활이 한결 편해졌다. 하지만 우리는 서비스직이 아니다. 사회복지사의 사회적 위치가 제자리인 것에 가장 큰 이유는 실무자들의 태도에 있다. 바로 스스로를 감정노동자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우리 실무자들은 기관의 이미지와 주무 관청에 접수 될 민원을 걱정하며 무조건적으로 낮은 자세를 취하라는 강요 아닌 강요를 받을 때도 많다. 

잘못하지 않은 일에 대해 무조건적인 사과를 해야 하고 수치심과 불쾌감을 느껴도 무조건 참아야 했다. 누구의 잘못이 아닌 그 문화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 

우리는 한 개인을 최선을 대해 존중하지만 정작 우리는 존중 받고 있지 않다. 자기의 위치와 가치는 절대로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사회복지사로서, 또 한 개인으로서 내 자신을 보호해야한다. 나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할 한 개인으로 여기며, 무리한 요구에는 단호하게 목소리를 낼 줄도 알아야 한다. 

단, 스스로 나의 역할을 정의해보고 그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여 한 점 부끄럼 없어야 할 것이다. 

그들과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님을 마음에 새기고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단단해지고 중심을 잡는다면 민원에 낮은 자세로 응대하는 문화와 전화 매뉴얼들은 자연스레 변화할 것이다.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나 “감사합니다.”, 과연 운을 떼는 첫 마디로 적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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