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선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당진수필문학회 회원

[당진신문=임유선]

짙은 어둠을 담은 보랏빛 포도를 한 알 따내어 입술에 댄다. 앞니에 반쯤 걸쳐 깨물어 터뜨린 뒤 꼭지를 손끝으로 눌러 마저 벗겨낸다. 버려질 껍질 속 달콤한 즙을 아까운 마음을 덜어낼 겸 살짝 빨아 마시고 내려놓는다. 입 댄 곳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 벌어진 곳을 감추는 방향으로 차곡차곡 일부러 모아두듯 쌓는다. 

입안에서는 이와 혀가 포도 살과 씨앗을 분리하는 복잡한 작업 중이다. 앞니로 과육에 틈을 내고 혀끝에 힘을 주어 씨를 빠짐없이 밖으로 밀어내면, 손끝으로 한 개에서 네다섯 개에 이르는 씨앗을 받아 껍질 무덤에 얹는다. 탱글한 포도알은 질감이나 잠시 느꼈을까, 이미 목구멍으로 넘어갔고 손은 다시 한 알을 따 다음 작업을 시작한다. 

유치원도 다니기 전, 나는 이런 일련의 반복 작업을 일찌감치 의식하고 효용 가치를 따지던 아이였다. 머리에 생각이란 것이 들어서고부터는 한글을 빨리 익혀 책에 빠져들었다. 집에 있던 전래동화, 위인전과 역사소설 속 세계에 빠져있으면 충분했다. 먹고 씻고 자는 것은 책 읽을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었다. 엄마가 억지로 밥 한 숟갈을 떠먹여 놓으면 두 시간 동안 씹지 않은 밥이 입안에 그대로 들어 있었다. 

어느 날 오전, 엄마가 특유의 생뚱스레 들뜬 목소리로 ‘나와서 포도 먹어라!’ 했다. 반응이 없자 세 번, 네 번 더 높아지는 부름. 미적이며 포도 그릇 앞에 앉았다. 몇 알을 먹었을까, 이것은 간식이 아닌 노동이었다. 

“그만 먹을래. 껍질 벗기고 씨도 뱉어야 하고 너무 귀찮아.”

엄마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싹 가셨다. 쓴맛 나는 찌푸림으로 포도가 담긴 스텐 바가지를 홱 들어 탁 바닥에 내리치더니 내 팔을 잡아 끌어냈다. 

“귀찮으면 밥도 먹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마!” 

파리채로 때리다 부엌의 튼튼한 나무 뒤집개로 바꿔 들었다. 너무 빠르고 거칠게 마구 휘두르는 통에 급소에 맞았다간 불구가 될 것 같았다. 스스로 알아서 움츠려가며 팔뚝이나 허벅지 등 맞아도 망가지기 어려운 부분을 대주었다. 무릎 꿇고 두 팔 드는 벌을 서다 오후 느지막이 방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릴 적 혼난 일이야 많았지만 이 일은 도대체가 영문을 모르는 비약적인 일로 따로 기억에 남았다. 

20년쯤 지나 자기 계발을 위한 워크샵에 갔다.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는 직장 상사의 강력한 추천으로 이끌리듯 떠밀리듯 등록한 것이다. 간략한 프로그램 소개 후,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나보다도 조금 더 어린 듯 한 워크샵 도우미가 내 앞에 마주 앉았다. 교재에 따라 일대일로 진도를 나가는 방식이었다. 도우미는 최소한의 예의를 차린 듯한 약간의 미소와 함께 과제를 읽어주었다. 

“마음에 걸리는 일을 떠올리고 최대한 자세히 이야기해 보세요.”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작든 크든 마음의 짐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다. 한참을 생각해도 이 낯선 이에게 허물없이 말할 만큼 별 것 아닌 이야깃거리는 떠오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최대한 가벼움을 가장한 태도로 시선을 피해 말했다.

“어릴 때 엄마가 제가 포도를 먹다가 귀찮다고 했다고 갑자기 화를 내셨어요. 근데 왜 그랬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가요.” 

“마음에 걸리는 일을 떠올리고 최대한 자세히 이야기해 보세요.”

“...?”

아무 말도 듣지 않은 것처럼 ‘마음에 걸리는 일을 떠올리고 최대한 자세히 이야기해 보세요.’를 다시 읽어준다. 아무리 성의껏 대답해도 마찬가지다. 이미 다 한 말들을 재조합해 대답하기를 스물 몇 차례 더했던가. 의아함과 불쾌감을 지나 끝을 모르니 무력해진다. 이제는 이 재수 없이 빙글거리는 면상 앞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라도 쥐어짜야 했다. 더 이상의 자세한 것을 어떻게 만들어 내나? 이 행위에 대한 모든 의문은 다 포기했다. 기분 나쁜 감정 길어 올릴 기력도 없다. 로봇 같은 도우미에게 뭐라도 인간 같은 반응을 끌어내려는 시도도 그만두었다. 순순히 시키는 대로 하려는데 똑같은 것만 계속 시킨다. 

세부사항을 더 지어내려면 상상력이 필요했다. 어린 시절 살았던 낡은 주택 구조를 머릿속에 떠올려본다. 지금보다 젊었던 엄마의 앳된 목소리, 막 씻은 포도에 맺힌 물방울, 나무로 된 방문의 니스칠 된 표면. 이것들이 기억에서 길어 올린 것인지 지금 내가 구상해 낸 드라마 세트장 속 풍경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아, 그렇다. 엄마는 호강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는 젊은 과부가 되어 혼자 일곱 자녀를 건사하셨다. 외할머니의 일손을 돕느라 아이들이 방바닥에 쪼그려 허리가 부서질 듯 무언가를 했다는 엄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때 어찌나 어깨가 빠질 것 같던지, 얼마나 힘든지 몰라! 배고픈 건 당연하고! 너네는 호강하는 거야.’ 엄마는 아이들이 오그린 자세로 고사리손을 움직여 고통뿐인 무언가를 끝도 없이 했던 기억을 몸으로 시늉해 보여주었다. 엄마의 어린 시절에 관해 내가 아는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즐거움이 묻은 추억은 단편도 들어본 적 없었다. 지나간 일에 그리움 한 점 없어 다시 꺼내 볼 필요도 없으신 것 같았다. 

결혼 후에도 어린 나의 눈에 비친 엄마의 삶이 행복해 보였던 순간은 그다지 없다. 작고 큰 억울함이 쉴 틈 없이 쌓이고 넘쳐 수시로 눈물을 터트리는 생활이었다. 그런 엄마에게 싱싱한 포도는 호강이었다. 밥만 양껏 먹어도 소원이 없던 시절을 딛고 빛깔 좋은 포도를 큰 그릇 가득 담아 먹게되다니, 그 시절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을까. 긴 시간을 달려 엄마 앞에 누운 그 포도는 정말이지 고귀한 성찬이었다. 언니와 나는 축하를 위해 초대받은 손님이었다. 문제는 어린 딸이 엄마의 깊은 사정을 알 리 없었다는 점이다. 그 귀한 포도 앞에 나와 맞이하기를 더디 하고, 나와서는 계륵마냥 성가신 취급을 하며 일찍 자리를 뜨려고만 했으니 실례도 이런 실례가 없다. 살아온 역사를 걸고 최고의 과실을 내어 놓은 잔치 주인에 대한 모욕에 다름 아니다. 엄마의 들뜬 행복은 얼마나 한순간에 꺼져버렸을까? 

변덕스러울망정 싱그러운 포도 하나로 그리 애처럼 기뻐할 수 있는 천진함을 지킨 것이 그녀의 힘이라면 힘이었을 것이다. 삶은 원래가 혼자라지만, 슬픔을 나눌 사람이야 없다손 쳐도 기쁨을 함께 할 사람이 없는 것은 더욱 지진 같은 외로움임을 이제 나도 안다. 포도가 맛있다고 함께 웃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어느 때고 혼자였다. 나는 울고 있었다. 엄마가 나를 때린 줄만 알았는데, 내가 엄마를 먼저 때렸다. 엄마는 얼마나 아팠을까? 
내 앞의 철벽이 환히 웃었다.

“축하합니다!”  

이제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무력했던 몸은 감옥에서 풀려난 듯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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