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활동보조인 업무
“무섭고 힘들기도...웃어주는 이용자 보며 힘 냈어요”
어르신들의 큰딸 역할하는 요양보호사로 제2의 삶 시작
“마음 나누는 인생을 함께 걷는 길잡이 역할 하고 싶어”

[당진신문=지나영 기자] 우리는 참 표현에 서투르다. 남을 칭찬하는 일에 인색하고 타이밍을 놓쳐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입 간지러워 참을 수 없는 착한 당진 사람들의 선행이 보인다. 내 고장 당진에 살고 있는 좋은 분들을 알게 된 이상 지나칠 수 없다. 이에 본지는 입 간지러워 참을 수 없는 착한 당진 사람들의 선행을 칭찬해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시청 사회복지과에 한 아버지가 조현병 증상이 있는 아들 A군(15세)을 데려와 소란을 피웠다. 아버지는 밖에서 볼일을 봐야하는데, A군이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아들을 봐달라”며 무작정 시청에 들어온 것. 

업무로 바쁜 직원들은 난감한 상황에서 A군의 활동보조인으로 근무하는 김희수 씨에게 급히 연락했다. 김희수 씨는 시청의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와 A군을 안아주고 달래며 집까지 무사히 데려갔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사회복지과 고복임 주무관은 “당시 김희수 씨는 아버지의 모습과 많은 사람들 속에서 놀라고 당황했을 A군을 안아주고 다독이며, 아버님을 설득시켜 A군과 집으로 돌아갔어요. 활동보조인이 아닌 엄마 같았죠”라고 회상했다.

김희수(58세)씨가 활동 보조인 일을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다. 지인이 센터에 활동 보조인 한 명이 비워졌다는 말을 듣고 단순히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등록했다.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올해 1월부터 3개월 동안 맡았던 A군은 조현병을 앓고 있어요. 아이의 집에 가면 저는 가장 먼저 칼과 가위와 같은 위험한 물건을 치우고, 청소를 하고 밥을 차려주죠. 무엇보다 아이가 사랑을 많이 받지 못했다는걸 느끼고, 사랑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번 더 안아주고, 관심을 주며 신경을 많이 썼죠. 그랬더니 처음에는 저를 낯설어하고 거리를 두던 아이가 나중에는 저를 먼저 반겨주고, 안아주는데 정말 감동이었어요”

활동보조인은 1주일에 5회, 4~5시간을 노인, 장애인의 가정에 방문해 가사와 이용자의 개인 활동 등을 돕는다. 그러나 김희수 씨는 A군이 천안과 대전으로 병원을 다녀와야 하는 날이면 아이의 사고를 막기 위해 함께 동행 했다. 하루종일 활동보조인으로 일한 셈이다.

“A군의 아버지가 신체적 장애와 정신 질환을 갖고 있어요. 아버님이 A군의 상태를 병원에 정확히 전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함께 동행하기로 했어요. 사실 한참 코로나 감염 확산 우려가 있던 시기에 저도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처지라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그래도 A군과 아버님의 상태를 아는데, 모른 척 할 수 없잖아요”

A군과 함께 3개월을 지낸 김희수 씨는 결국 A군이 병원에 입원을 하면서 활동보조인 역할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3년간 활동 보조인으로 일을 하면서, 김희수 씨는 늘 몸과 마음을 긴장을 해야 했다. 특히 위험한 상황을 맞닥트릴 수 있다는 긴장감에 항상 경직을 하다 보니 일을 그만 둔 뒤에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하지만 김희수 씨는 몸이 힘든 것 보다 이용자의 보호자들이 내뱉는 말 한마디가 더 속상했다고 털어 놨다.

“활동보조인은 보호자가 아닌 이용자의 요구를 먼저 들어줘야 해요. 그런데 보호자들은 활동보조인에게 ‘그까짓거’라며 집안 잡일을 비롯해 다른 식구의 밥 차리기를 요구하죠. 결국 보호자가 해달라는 서비스를 다 들어주면 저희는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해요. 그래서 저는 활동보조인 뿐만 아니라 보호자들도 서비스 이용전에 충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3년간의 활동보조인 일을 마친 김희수 씨는 무섭고 몸과 마음으로 힘든 순간들이 분명 있었다고 말하면서도, 이용자들의 밝고 환한 웃음과 먼저 다가와 안아줬던 따뜻한 기억들이 더 많았다고 말한다.

“제 인생 좌우명이 ‘금새 잊고 희망적으로 좋은 순간을 찾자’에요. 일을 하면서도 이용자들의 순수한 웃음과 저를 찾아 안아주는 모습을 보면 그 힘든 순간들이 사라져버려요. 그리고 이러한 어려운 가정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서인지 누구보다 순수해요”

활동보조인 일을 하는 동안 ‘나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김희수 씨. 무엇을 먹더라도 이용자에게 나눠줄 것을 생각했고, 이용자와 비슷한 모습의 사람을 보면 혹시나 싶어 뒤돌아 보곤 했다. 

지난 4월 A군의 활동보조인 업무를 끝으로 그녀는 요양보호사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며 어르신들의 미소지기이자 큰 딸 역할을 맡아 기쁨과 행복을 전하고 있는 김희수 씨는 앞으로도 누군가와 함께 마음을 나누고 인생을 함께 걷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싶다는 희망을 전했다.

“저는 제 마음과 사랑이 필요한 분들에게 아낌없이 나눠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이 일을 계속 하게 될 것 같고, 어디서든 제 역할을 필요로 한다면 최선을 다해 곁에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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