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호 칼럼■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그 바탕에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질서는 사물이 혼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순서나 차례를 말한다.
 이 질서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사물이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사물이 제자리 즉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질서가 지켜질 수 있는 것이다. 사물이 있어야 할 곳 즉 제자리에 있지 않고서는 질서가 지켜질 수 없다.
 질서가 지켜지지 않으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질서가 지켜지지 않고서는 국가가 존재할 수도 없다. 질서가 지켜지지 않으면 어떤 것도 제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질서가 지켜지지 않는 사회, 기능이 마비된 국가를 상상할 수 있는가?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물이 제 자리에서 제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그 순서에 따라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나가야 한다. 제 물건이 제 자리에 있지 않을 때 그것은 곧 혼란이다. 뒤죽박죽이 되고서야 그 속에서 어찌 순서를 찾을 수 있으며 어찌 질서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제 물건은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도 제자리 즉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사회가 매우 혼란스럽다. 혼란의 정도가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있다. 이 혼란이 어디서 왔는가? 이 혼란의 단초는? 실종이다.
 누군가 제자리 즉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은 탓이다. 그 누군가가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어 이 실종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은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다는 반증이다.  국회에 국회의원이 없다. 국회에 국회의원이 없다면 국회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 이 혼란의 단초는 바로 우리 국회의 실종에 있는 것이다.
 파장에 이르러서까지도 겉돌기만 할뿐 문제해결을 위한 제 구실을 해내지 못하던 17대 국회가 끝났는데 18대 국회는 개원도 하지 못하고, 원구성도 하지 못했다.
 어떤 상황논리 속에서건 최소한 개원의식은 치르고 국회의장을 뽑고, 18대 국회의 존재와 그 출발을 만방에 공표했어야 했다. 그리하여 국민의 뜻을 존중하고 대변하는 위임받은 대의기관으로서의 소중한 권리와 의무와 역할을 겸허히 그리고 단호히 수행해 나가겠다는 의지천명은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막중한 자리에, 그들에게 제자리인 그 자리에 없었다.
 사회적 혼란이 정도를 넘고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있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제자리를 찾아 들지 않고 있지 않은가? 직무유기도 이정도면 기네스북 등재감이다. 어떠한 이유로도 변명이나 설명이나 합리화될 수 없는 대의민주주의의 실종인 것이다.
 그러니 국민이 나서서 대신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맡은바 소임을 다 하지 못하는 그들에 의해서 국민들이 등 떠밀려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국민들은 제자리가 아닌 곳에 나섰다. 학업에서, 직업에서 열심을 다해야하는 그들이, 하루의 일과를 파한 뒤 휴식을 취하고, 단란한 여가를 즐겨야할 시간에 그들이, 국민의 기본권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하여 실종된 대의정치를 대신하여 직접 거리로 나서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존재가 없는 국회를 대신하여, 국민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소통을 위하여, 정부를 상대하고 대통령을 상대하여 직접토론을 요구하고 시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촛불집회, 그 현장.
 쇠고기 수입문제에서 비롯된 촛불시위는 정당했다. 정부의 졸속 협정타결에 대한 질책과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들에 대한 우려와 함께 대국민 기만에 대하여 분노하는 국민의 뜻을 국민의 목소리로 직접 표출해 보여준 것이다. 거기까지였다. 촛불집회와 국민행동의 역할과 효과는.
 이제 정치권이 발 빠르게 움직일 차례였다. 국회가 나서서 정부를 질책하고, 토론하고, 문제점을 살피고, 점검하고, 수정하고, 바꾸고 하는 기능을 해야 할 차례였다. 그런데도 국회는, 산재해 있는 오만과 편견으로 소통부재에 빠져있는 정치권에 소통의 길을 터주며 보내는 국민의 이 준엄한 질책과 우려와 충고를 끝내 외면하여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그러니 촛불집회는 계속되고, 본래의 순수성이 변색되는 구호가 섞여 나오기 시작된 것이다. 국정전반에 대하여, 심지어 정권퇴진까지 요구하는, 마지노선을 넘는 구호까지를.
 이러한 심히 우려되는 상황 속에서도 제자리를 찾지 않는 국회는 스스로 존재가치마저 부정하는 꼴이 아닌가? 어느 보수단체에서는 등원거부 국회의원들의 세비에 대한 손배소를 추진 중이라 한다.
 손배소를 추진할량이면 어찌 세비에 그칠 것인가? 국회부재로 비롯된 사회적 국가적 직,간접자본의 손실은 어찌 면탈될 수 있으며, 국민적 피로는 어떻게 위무될 수 있을 것인가?
 직장이탈 근무지이탈 근무태만 장기결근 등만으로도 직장인에게 파면사유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정치도 직업이다. 월급(세비) 받지 않는가? 참고 봐주는 한계가 어디까지일까 더 이상 시험하지 말기를, 참을성이 이미 한계를 벗어나고 있는 사장(국민)은 바라고 기다리고 있다. 조속한 업무 복귀를. 역할 감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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