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부터 복귀하는 순간까지 긴장 이어져
외상후 스트레스 겪는 당진소방관들 위해 지역 예술가 작품 기증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이유 없이 눈물이 나고 슬프다는 감정이 마구 들었습니다. 대인기피증도 생기고 간단한 글자를 읽는 것도 어렵고... 사람들이 흔하게 보는 풍경이라도 나무에 무언가가 걸려있으면 마치 사고 현장이 떠오르고... 화재현장에서 느꼈던 불에 탄 냄새도 생생하고... 결국 휴직을 하고 구급팀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진신문=배길령 기자] 여성전문구급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현장을 누볐던 한 당진소방관이 있다. 지난 9년 5개월을 구급대원으로 지냈지만 어느 날 불쑥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가 자신을 덮쳤다. 결국 김수연 소방관은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지면서 지난해 1년 반의 휴직을 가지고 현재는 당진소방서 홍보팀으로 복직해 치료 중이다. 

25년을 소방관으로 근무한 이상용 소방관도 마찬가지다. 작은 TV소리에도 예민해졌고 매번 현장으로 출동할 때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중압감을 느낀다. 특히 죽음을 목격한 순간은 마치 어제 일처럼 계속 떠오른다.

이상용 소방관은 “화재 현장에서는 어둠속에서 최대한 벽을 짚으면서 화점을 찾아가는 동안 어떤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지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며 “오랫동안 소방관으로 지내왔지만 현장에서 목격한 죽음은 마치 어제 일처럼 평생 따라 다닌다”고 설명했다.

특히 구급대원이 겪는 부담감은 더 크다. 생과 사의 기로에선 환자에게 최선을 다했음에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닥치면 죄책감과 함께 마음이 무거워진다.

당진소방서 구급팀. 사진 왼쪽부터 최우영, 이소라, 음진우 구급대원.
당진소방서 구급팀. 사진 왼쪽부터 최우영, 이소라, 음진우 구급대원.

음진우 소방관은 “심정지 환자였던 분이 소방서로 걸어 들어오시는 모습에는 뭉클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지만 여전히 약자인 아이와 몸이 불편한 장애인분들이 크게 다치는 경우나 살리지 못했던 경우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소방관은 화재현장에서, 위급한 상황 또는 사고현장에서 마음을 동동 구르는 우리들의 마음에 1초라도 빠르게 응답하는 사람들이다.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사명감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한발 먼저 달려 나가고 믿음직한 손길을 내미는 이들이 바로 소방관이다.

하지만 이들이 하루 동안 겪어야 하는 고통의 크기는 얼마일까. 출동은 요구조자의 발생이고, 그 말은 어떤 위험한 상황 또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긴장감과 중압감이 출동부터 이후 복귀하는 순간까지 이어진다.

당진소방서를 찾은 따뜻한 50여점의 위로

긴박한 현장, 최선을 다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소방관이라는 이름과 그 역할의 무게로 힘들고 보기 어려운 참담한 순간에도 겪어내고 견뎌내야 하는 소방관들. 이들을 위해 따뜻한 마음을 담은 위로의 그림들이 당진소방서를 찾았다.

소방행정과 정재룡 과장은 소방서 내 텅 빈 벽들에 지역 예술가의 기증 작품을 전시하기로 기획했다. 소방대원들이 출동현장에서 돌아와서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긴장감을 유지한 채 지내는 모습에서 조금이나마 시선을 둘 수 있는 그림이 소방대원들에게 따뜻한 치유의 힘을 불어넣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소방대원들의 따뜻한 치유를 위해 소방서 내 텅빈 벽들에 지역 예술가의 기증작품 전시를 기획한 당진소방서 소방행정과 정재룡 과장. 
소방대원들의 따뜻한 치유를 위해 소방서 내 텅빈 벽들에 지역 예술가의 기증작품 전시를 기획한 당진소방서 소방행정과 정재룡 과장.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당진소방서 김수연 소방관은 전시되어 있는 소나무 그림을 보면 지쳤던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설명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당진소방서 김수연 소방관은 전시되어 있는 소나무 그림을 보면 지쳤던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설명했다.

정재룡 과장은 “저도 현장에서 겪어봤던 일이고, 대부분의 소방관들은 항상 좋지 않은 상황에 노출되지만 스스로를 다독이고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은 없다”며 “다음 출동까지 잠시만이라도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벽보다 평안함과 생기가 느껴지는 작품을 보며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소방서를 찾은 작품들은 서각, 서예, 민화, 수채화 등등 당진에서 예술을 하는 많은 작가들의 도움으로 총 50여점이다. △늘꿈 갤러리의 김은숙 관장과 화실회원들 △수채화는 구목리 작가와 회원들 △당진향교의 정덕영 선생 △서각은 하헌완 회장과 회원들 △민화는 이숙경 작가가 작품을 기증했다.

구목리 작가는 “당진문화원으로 직접 찾아오셔서 소방관들을 위한 순수기증자를 알아봐달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며 “순수 그림을 그리는 회원들로 작품이 썩 멋있지는 않지만 과장님의 취지가 훌륭하셔셔 졸작이지만 건네드렸다”라고 설명했다.

김윤숙 관장 역시 “다른 곳은 몰라도 소방관은 위험한 일과 봉사를 많이 하시는 분들이라서 기쁜 마음으로 전달했다”며 “회원 분들도 그림으로 힐링하는 좋은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많은 분들이 함께 작품 기증에 참여해줬다”라고 전했다. 

소방관이라면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일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과 주취자의 폭력, 출동이 없으면 “쉬는 것 아니냐”는 오해는 소방관들에게 기운 빠지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진소방서를 채운 50여점의 작품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쌓이는 힘이 된다. 

김수연 소방관은 “아직도 매일 근무를 계속해도 좋은지를 갈등하고, 힘들지만 소방서에 전시되어 있는 소나무 그림을 볼 때면 불안하고 지쳤던 마음이 차분하고 고요해진다”고 말했다.

당진소방서 발령 10개월차에 접어든 인승교 소방관.
당진소방서 발령 10개월차에 접어든 인승교 소방관.

당진소방서 발령 10개월차에 접어든 인승교 소방관은 “아직은 현장에서 긴장감으로 떨었던 적도 많았지만 소소하게 건네주시는 고맙다는 인사말에 소방관을 선택한 것이 결국 맞았다고 생각했다”며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시민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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