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설입니다. 어릴 적 양력 1월 1일은 ‘일본 설’이라면서 집안 어른들이 ‘설’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음력 1월 1일이 진짜 우리 설이고 비로소 나이 한 살을 더 먹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어르신들이 양력설을 인정하지 않았던 이유를 좀 더 커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1910년 일제 식민통치가 시작되면서 일제는 우리 한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말살하기 위해서 우리 고유의 설을 구정(옛날 설)이라고 폄하하면서 일본 설인 양력설을 신정이라고 하면서 신정을 쇨 것을 강요했습니다. 그러니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수년 동안 구정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던 때를 반성하게 됩니다.

그렇게 굳건히 지켜온 우리 고유의 설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 설을 앞두고 어머니는 보름 전부터 집안 이불을 모두 빨아 내걸고, 떡국 떡 미리 빼 식어지면 굳어지기 전에 3-40명 친인척이 모여 먹고도 언니, 오빠 고모, 삼촌 가져갈 양까지 썰어대야 하니 손에 굳은살 박이고 물집이 잡히고, 방방마다 유과 반죽이 널어져 잠자리가 불편해져도 가슴벅차오르던 그 설레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 그 설레임이 그리워져 대목장은 아니지만 지난 토요일 오후 전통시장을 찾아보았습니다. 시장 입구 떡 방앗간은 예상대로 3단 찜통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쪄낸 떡 반죽을 뜨거운 김을 맞아가며 구멍 속에 우겨 넣으면 가래떡이 되어 나오기가 바쁘게 자로 잰 듯 같은 길이로 잘라 찬물에 헹궈 나란히 담습니다.

“월매나 바쁘시대유?”

“말 허믄 뭐 혀. 명절 딱 보름 전부터는 오줌 눌 시간도 없다니께. 하하하.”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바쁘고, 뜨겁고 무거운 찜통을 들었다 놨다 하니까 어깨도 쑤시고, 쭈그리고 앉아 가래떡 잘라대니까 무릎이 견뎌내질 못할테지만 그래도 돈 좀 쥘 수 있는 명절 대목이 반갑고 고맙습니다.

숫자 5와 0이 붙은 날만 열리는 당진전통시장이 평상시 같으면 노점상을 볼 수 없는 18일인데도 꽤 북적거려 깜짝 놀랍니다.

“원래는 이렇게 나와서 파는 날이 아니죠. 곧 대목이라 그래요. 대목장이 20일 월요일인데 평일이다 보니까 직장 가시는 분들은 아무래도 주말을 많이 이용하시는 듯 해요.”

“손님들이 지역상품권 많이들 들고 오시나요?”

“그렇죠. 직장에서 명절이라고 상품권으로 받으신 분들이 평일은 직장 가시니까 오늘 같은 날 많이 나오시는 것 같아요. 덕분에 전통시장이 활기를 띠는 것 같습니다.”

점포 앞에서 각종 젓갈 파는 잘생긴 총각이 친절하게 말해줍니다.

“우리 손지가 이 집 김을 그리 좋아 혀. 떡국에도 넣고 꼭 사야제.”

즉석으로 김을 구워 파는 집 앞에 할머니들이 순서를 기다립니다.

“우리 자식들은 소고기보다 이 굴을 넣고 끓여야 좋다고 혀.”

“게 무침 할 것인 게 좋은 놈으로다가 넣어 주쇼. 꼬막도 한 사발 담아주쇼.”

“쪼매 싸게 주이소.”

생선가게 앞에 조선 팔도 사람 다 모여 구성진 말들이 오가고, 물건도 돈도 오갑니다.

시장 안에 동네마트도 대형마트에 질세라 ‘설맞이 초특가세일’을 큼지막하게 써서 현수막으로 내걸고 전통시장 찾은 손님들 눈길 발길 사로잡습니다. 속으로 ‘동네마트 파이팅!’을 외치며 시장 안을 한 바퀴 휘돌아 나오는데 볼이 얼얼하고, 저절로 손이 주머니를 찾아들어갈 만큼 적잖이 추운데도 변함없이 노점상 상인들 찾아준 손님들에게 한결같은 웃음으로 맞이하는 모습이 감동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설레이는 설, 대목 맞은 전통시장 상인들 대박 나 함박웃음 짓기를, 안전하고 즐거운 귀향길.귀성길 되시길, 가족과 함께 웃음이 넘쳐나는 행복한 설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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