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씨 가족들, 매달 2번 장애인시설과 요양원 방문해 미용·목욕봉사
“봉사는 품앗이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서로 도우며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당진신문=배길령 기자] 우리는 참 표현에 서투르다. 남을 칭찬하는 일에 인색하고 타이밍을 놓쳐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입 간지러워 참을 수 없는 착한 당진 사람들의 선행이 보인다. 내 고장 당진에 살고 있는 좋은 분들을 알게 된 이상 지나칠 수 없다. 이에 본지는 입 간지러워 참을 수 없는 착한 당진 사람들의 선행을 칭찬해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45년 전쯤 됐을 거예요. 엄마가 우리 6남매를 참 열심히 키우셨어요. 바다로 다니시면서 정말 억척스럽게 돈을 모으셨거든요. 그런데도 꼬깃꼬깃한 돈을 어렵게 사시는 분들에게 전해드리곤 했거든요. 아직도 그때의 엄마모습이 기억나요. 그렇게 우리형제들에게 엄마의 모습이 이어져온 게 아닌가 싶어요”

김영란 씨(54)의 가족들은 매달 2번 장애인시설과 요양원 등을 방문해 미용봉사와 목욕봉사를 하고 있다. 때때로 당진종합병원을 방문해 미용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영란 씨네의 봉사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가는데 가족 대부분이 미용업에 종사하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처음에는 형제들끼리 시작했지만 자녀들이 자라면서 가족봉사단의 인원은 점점 늘었다.

“주일이면 교회를 갔다가 오후 나절 요양시설을 방문해서 봉사를 시작하죠. 우리 동생들이랑, 조카, 또 우리 아이들도 7년 전부터는 같이 다니고 있거든요. 애들 외숙모도 같이해서 가족들이 많이 나설 때면 10명은 되는 거 같아요”

영란 씨가 가족봉사단에서 맡은 일은 어르신들의 잘 정돈된 머리를 감겨드리거나 목욕을 시켜드리는 일이다. 다른 가족들과 달리 헤어디자이너가 아니기 때문에 목욕은 오로지 영란 씨의 몫이다. 한번 방문할 때면 적어도 12명의 어르신 또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분들의 머리를 감겨드리거나 씻겨드린다.

“목욕을 여러 차례 씻겨드리다 보면 땀이 온몸으로 흘러요. 그래도 그분들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 참 기분이 좋아요. 그리고 또 그분들의 고통과 마음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계속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영란씨네가 가족봉사를 다니게 된 것은 가족들 중 장애를 가진 가족이 있어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차별하는 시선을 가슴 아프게 겪어왔기 때문에 가족들은 한마음으로 장애인 시설과 요양원 등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도 동등한 사람으로 이해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봉사를 시작했다.

가족봉사가 한 달에 2번 정기적으로 있다면 영란씨의 개인봉사는 철마다 찾아온다. 집에서 직접 담은 꽃게장과 김치 등을 전달하는 봉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진에서 태어나고 또 자랐기 때문에 당진의 곳곳을 모를 수가 없다는 그는 부녀회 활동이나 이곳저곳에서 알게 된 홀로 계신 어르신들과 조손가정을 위해 반찬을 만들어 전달한다.

“게장을 좋아하시는 어르신들이 계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맛있게 잡수시라고 전달해드리고 또 저도 엄마이다 보니까 조손가정에 필요한 김치나 반찬들을 나눠주기도 하고 그래요”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어르신만큼이나 아이들에게 더 관심이 간다는 영란 씨는 녹색어머니로 교통안전지도를 나서고 상처받은 아이들의 보금자리 시설에 생필품을 전달하기도 한다.

“어린아이부터 고등학생까지 한 가족이 되어 지내는 곳이 있어요. 처음 보금자리 시설에 방문했을 때는 참 많이도 울었어요.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며 지내는 모습이 아이들을 ‘아이’스럽지 못하게 했으니까요”

자주 방문할 수는 없지만 방문 때마다 지인들의 후원물품을 받아 고마운 마음이라는 영란 씨에게 봉사란 크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서로 품앗이를 나누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는 봉사라는 말이 품앗이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하거든요. 인생은 언제 어떤 형태로 어려움이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서로 도우며 살아야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기력이 있을 때까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일부분에서 서로 돕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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