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신문 이다은 기자] 평화는 사람들의 바람이 세질수록 힘이 강해진다. 당진신문과 함께하는 ‘이다은 기자의 평화의 바람’은 우리가 살아갈 미래를 위한 평화의 이야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그들의 만남에는 눈물이 묻어있다지난 8월 20일 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금강산 호텔에서 열렸다.1985년 첫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후 21번째 상봉이다. 1, 2차로 나누어 진행된 이번 상봉에는 남측 89가족과 북측 81가족 등 170가족이 양측의 상봉단을 만났다. 긴 헤어
[당진신문 최효진 기자] “수화를 30분 넘도록 통역하다보면 집중력이 흩어집니다. 30분 간격으로 서로 교대를 해주고 있습니다”당진시의회가 최초로 수화통역을 시작했다. 시정질문이 이루어지는 4일 동안 수화통역을 맡은 당진시수화통역센터의 임상빈 수화통역사와 박유미 수화통역사는 의원들의 질문들을 통역해 방송으로 내보냈다.임 통역사는 “일반적인 통역과는 아무래도 달라요. 전문용어가 많은 것도 이유이지만 시정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경우에도 통역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돌려서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이것은 언어의 구조적인
[당진신문=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이렇듯 강선필은 3.1혁명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지만 격문 제작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독립운동에 기여하였다. 강선필이 이렇게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은 강선필 스스로가 조선이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독립만세시위를 통해 독립선언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적극적인 생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러한 사실은 강선필과 박노영, 박수찬을 조사한 일제의 신문조서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박노영과 박수찬은 강선필이 자금을
2. 상록수 여자 모델 최용신의 천곡 강습소 천곡학원[당진신문 기획연재] 최용신 선생은 농촌운동가이자 민족운동가로서 심훈의 ‘상록수’ 소설여주인공의 모델로 YWCA에서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며 기독교농촌운동의 일환으로 계획되고 추진된 특징이 있었다. 당시 YWCA의 농촌파견교사로 임명되어 1931년 10월, 경기도 화성군 천곡리에 파견되면서 그는 농촌을 사랑하고 농민의 아픔을 함께하면서 농촌의 아동을 민족의 동량으로 키우는 구국교육운동에 나섰다.신여성으로서의 자긍심과 처녀로서의 수줍음도 버린채 맨발로 논에 들어가 모를 심고 김을 매며
사람들은 아름다운 창경궁을 보며 웃고 행복해 한다. 가을이 되면 단풍 구경하기에도 좋고 야간에는 아름다운 조명으로 멋있는 풍경을 선물한다. 하지만 창경궁이 겪어온 아픈 역사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창경궁은 성종이 대비들을 모시려고 만든 곳이었다. 몇 차례 화재로 불탔지만 광해군 때 다시 복원 되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시작으로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1911년부터 해방이 되고도 한참 뒤인 1983년까지 아예 ‘궁’ 대신 ‘원園’으로 불렸던 창경궁. 이토 히로부미의 심복이자 궁내부 차관이던 코미야 미호마츠의 제의로 이곳에 동물원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한가 싶은데 낮 동안에는 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위에 아직은 자꾸만 그늘을 찾게 만드는 지난 9일 오후 서산어린이도서관을 오래간만에 찾아보았습니다.도서관을 들어서자마자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바닥에 벌러덩 누워서, 어떤 아이는 책꽂이 틈새에 만들어진 나만의 공간에서, 어떤 아이는 한쪽 벽면에 설치된 책꽂이를 연결하는 쇼파에 누워서, 어떤 아이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생긴 공간에 누워서, 어떤 아이는 지적호기심이 급한 나머지 책을 선택한 바로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 어떤 아이는 책상에 바르게 앉아서
[당진신문 이선우 작가] 얼마 전 한국방송작가협회보에 실을 기고문을 의뢰 받고 역시나 마감의 턱밑까지 닥쳐서 겨우 써냈다. 작가협회보에 실을 글이니 작가로서의 나를 돌아보는 내용이어야겠다는 가닥은 잡았지만 그 당시 나는 무려 ‘셀프리더십’을 주제로 한 5회차 강의 자료를 만드느라 내 발등을 찍고 있던 때였다. 마감을 지켜야 하는 삶을 산지 이십년이 가까워오는데도 도무지 이 마감과는 친해지질 않는다!이번에도 역시 나는 당진신문 마감날을 까맣게 잊고 룰루랄라 충남서부평생학습관에 찾아가 자서전쓰기지도사 양성과정 수업을 청강 중이었다. 당
[당진신문 최효진 기자] 당진시어울림여성회(이하 어울림여성회)가 교육실을 마련하고 개소식과 더불어 ‘후원의 밤’이 지난 달 31일 열렸다. 이 자리에는 당진참여연대, 당진시농민회 관계자뿐만 아니라 녹색어머니회 등 지역의 다양한 분야 활동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어울림여성회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어울림여성회가 당당히 지역 운동의 한 축으로 인정받는 자리이기도 했다. 많은 이들의 축하 속에 시작된 새로운 교육실의 첫 번째 강좌로 ‘여성들을 위한 역사문화의 체험지도자 양성과정’이 지난 4일 열렸다. 충남도의 여성사회참여 확대 사업의
3일 오전부터 하루 종일 가을을 알리는 단비가 주륵 주륵 내립니다.일하다 말고 오후 어느 때 잠시 창밖을 내다보니 아들놈 보다 일찍 출근한 엄마의 ‘우산 꼭 챙겨가라’는 당부말씀 까마득히 잊고 학교에 간 어느 집 철부지 초등학생이 하굣길 가방을 머리에 이고 잽싸게 달려보지만 온몸이 흠뻑 젖었습니다. 한시도 비울 수 없는 일선에서 우산 들고 마중조차 나갈 수 없는 엄마의 마음도, 눈시울도 함께 흠뻑 젖었겠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농사일에 늘 분주하시던 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비가 내려도 택배아저씨 어김없이 아파트 후문을 들어
[당진신문 기획연재] 심훈은 ‘그날이 오면’ 시와 ‘상록수’ 계몽소설로 조국의 광복을 위해 타오르는 횃불을 높이 밝혔던자유주의 민족예술가이다. 이에 심훈탄생 117주년(9월 12일)과 심훈서거 82주년(9월 16일)을 맞이하여 그의 혼불로 형성된 한류문화를 기리고자 한다.기미년 함성과 피를 찍어 쓰듯 토해낸 ‘그날이 오면’과 ‘상록수’는 일제강점기와 6.25의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조국근대화와 새 역사 창조의 뿌리가 되어왔다.특히 상록수소설의 여자모델 실제인물은 함남 덕원군 두남리 출신 최용신이며, 남자모델 실제인물은 충남 당진군
8월 30일 오전 11시. 당진 구룡리 김상범(귀농인) 씨 농장에서 아낙네들이 요즘 한참 제철인 깻잎을 수확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가물었다가 오래간만에 내려준 단비를 맞아 그런지 유난히도 파릇파릇한 깻잎이 잔잔한 바람에 너붓너붓 나부끼고 아낙들의 웃음소리 작은 뒷동산에 메아리친다.“우리 아파트 김상범 선생님께서 귀농해 농사 지시는데 깻잎 실컷 따다 먹으라고 해서 출동했어요. 오늘 저녁 양념간장 만들어서 쓱쓱 비벼먹을거에요. 깻잎에 철분이랑 비타민이 그렇게 많다잖아요.”“우리 아이가 깻잎장아찌를 좋아해요. 간장장아찌를 담가볼 생
[당진신문=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 소장] 경성시내에 배포된 격문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격문을 읽은 수많은 사람들이 격문을 통해 독립만세 운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격문을 통해 독립운동 소식을 공유하게 되었고, 격문을 보고 만세시위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았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유통되는 격문은 전국적으로 유포되어 만세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는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따라서 일제의 입장에서는 격문을 제작하여 배포하는 행위를 가장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출판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격문을 제작하여 배포한
[당진신문] 국내 유일의 발동기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이희양 관장(58세)이 당진시로부터 제18호 당찬사람들에 선정됐다.대한민국 발전의 산 증거인 발동기는 어른에겐 추억으로, 아이들에겐 역사로 남은 물건이지만 이 씨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값진 보물이다.발동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모은 발동기 수만 180여 점. 그는 멈춰선 발동기의 세월을 어루만져 새 생명을 불어 넣는 발동기 박사다.이런 그에게도 기계라면 쳐다보기도 싫었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 탈곡기 사고로 왼손을 크게 다친 후 기계와 연을 끊고 몇 년
작은 정의가 만들어 내는 평화지난 4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린 것을 시작으로 8월에는 금강산 호텔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9월 남북의 정상들이 다시 만난다. 지금 한반도는 정전을 넘어 종전을 향한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하지만 이런 평화의 분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남아있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시작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하고 있고, 우리 지역에서도
[당진신문=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 소장] 경성에서 3.1만세 시위가 벌어졌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던 강선필은 1919년 3월7일 아버지와 함께 고향인 당진 순성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경성에서 순성으로 귀향한 것은 강선필의 뜻이라기보다 아버지의 뜻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경성에서 유학 중이던 많은 학생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발적으로 귀향하였다.이렇게 학생들이 고향으로 돌아갔던 것은 학교가 휴교하였던 점도 있었지만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는 부모들의 뜻에 따랐던 점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많은 부모들은 경성에서 3
[당진신문 배창섭 기자] 당진시 도시재생과 안병환 도시재생팀장(54)이 공주대학교에서 공학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안 팀장은 공주대학교 대학원 농공학과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 ‘괴재슬러그 골재를 적용한 농어촌도로 포장 콘크리트의 성능 및 현장 적용’이 심사를 통과 지난 8월 24일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학위논문은 우리지역 제철소에서 나오는 괴재 슬러그를 이용하여 콘크리트 포장공사시 굵은 골재로 사용하는 연구를 토대로 제안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안병환 팀장은 “평온한 바다는 결코 유능한 뱃사람을 만들 수 없듯이 두려움과 설렘으로 공직
주말인 25일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터라 오후 5시를 살짝 넘겨 온 식구가 저녁식사를 일찌감치 마치고는 산책 겸 마침 5일장을 맞은 당진 재래시장으로 발걸음을 향해봅니다.“한 바구니에 5천 원 팔던 참외, 지금부터 5천원에 두 바구니 드려요!”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안 사면 무진장 손해일 것 같은 참외장수 아저씨의 당당한 외침에 후루룩 달려가 봅니다. 외모도 매끈하고 싱싱해 보이는데 가격까지 저렴하니까 계획에 없던 참외를 주섬주섬 사 담는 주부들 틈에 끼어봅니다.“집에 먹어야 할 과일이 많은데 큰일났슈! 이거 언제 다 먹는댜? 부지런히
[당진신문 이다은 기자] 평화는 사람들의 바람이 세질수록 힘이 강해진다. 당진신문과 함께하는 ‘이다은 기자의 평화의 바람’은 우리가 살아갈 미래를 위한 평화의 이야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로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기까지 우리의 8월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달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일제의 무력 앞에서도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건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때로는 알려지기도 때로는 그대로 잊어지기도
19일 오후 조선시대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달빛을 보고 득도하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 간월도를 향해 가는 길은 도로확장공사가 한창입니다.공사중이라 반듯한 길 아니어서 울퉁불퉁 덜컹덜컹 요란하지만 푸르름 가득한 바다와 드넓은 갯벌, 간월암 너머로 일몰이 장관인 이곳에 가면 새콤달콤 간재미 무침과 고향집 냄새 가득 머금은 청국장에, 돌솥에 갓지어낸 영양굴밥에 어리굴젓을 곁들여 김에 싸서 한입. 또 뜨끈뜨끈한 굴 파전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 후루룩 들이켜고 생각을 하니 달리는 차 안에서 벌써부터 군침이 돕니다.해변 길을 내달리는데 썰물 때라서
[당진신문=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 소장] 강선필(姜善弼)은 1896년 순성면 성북리 478번지에서 태어났다. 순성면 성북리 478번지 일대는 성북리 중에서도 유동이라 불리는 마을이다. 강선필의 본적지인 순성면 성북리 478번지는 순성에서 당진으로 향하는 성북리 도로변에 있는데 옛 유동초등학교가 있던 곳으로 지금은 아미 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순성면 성북리는 몽산성의 북쪽 뒤편을 뜻하는 지명으로 순 우리말로는 잣뒤라고도 불리는데 진주강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마을이다. 강선필은 근대시기 면천에 공립보통학교가 생기면서 면천공립보통